SPECIAL FEATURE
Interview - 안도현

시인

안도현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문학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모닥불』,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그대에게 가고싶다』, 『바닷가 우체국』, 『서울로 가는 전봉준』,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간절하게 참 철없이』 등을 냈고, 얼마 전 4년 만에 『북항』을 냈다. 현재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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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醫員)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

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북항』 중 ‘일기’ 전문

 

 

『북항』 문학동네 / 2012

 

처음 시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으로 단단히 마음을 먹고 시를 쓴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때까지 나는 학교에서 줄곧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중학교 때 해마다 나오는 교지가 있었고, 거기에 들어가는 자잘한 컷을 그리는 일은 당연히 미술반원들의 몫이었다. 한 번은 그 일에 게으름을 피우다가 교지 제작을 지도하시는 국어 선생님께 불려가 사정없이 ‘귀싸대기’를 맞는 사건이 벌어졌다. 엉뚱하게도 그때 나는 시를 써서 교지에 투고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지만 숙제나 백일장 같은 학교 행사를 제외하고서는 스스로 글을 써 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막막했다. 그 며칠 동안 도서관에서 수백 편의 시를 읽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가까스로 시 한 편을 완성했는데, ‘가을’이라는 시였다.

그러나 막상 졸업식 무렵에 받아 본 교지에는 그 심혈을 기울인 시가 실리지 않았다. 그럴 때를 대비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은 독후감을 영악하게도 같이 투고했는데, 그건 실려 있었다. 줄거리와 해설을 적당히 짜깁기한 독후감의 남루한 문장과 내용이 나를 부끄럽게 했었던 기억이다. 충격적이기도 했고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안목에 문제가 있거나 내 시쓰기 수련이 어설픈 거라고 함부로 단정을 지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미술반이 아니라 문예반에 들어가 시를 써봐야겠다고 마음도 바꾸었다. 유명한 시인이 되진 못하더라도 고등학교 교지에 시 한 편은 실리기를 바라면서. 시인으로 살아가는 꿈을 처음 가진 것은 그때였다. 어떤 사소한 계기가 인생을 이끌어 가기도 한다는 것을 그동안 많이 보아 왔다.

 

시인이라는 것이 직업인지 궁금하다. 사람들은 삶의 방식이라고, 정체성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직업이라는 것이 되려면 시를 써서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직업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시로 먹고 살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그리고 시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현실이 바라는 바의 반대쪽으로 가려는 데서 생겨난다. 물질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삶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게 시고, 오직 삶의 목표가 부와 명예를 높여가는 것이라 생각될 때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게 시이기 때문에, 직업이라고 말하기에는 어색함이 있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의 어려움은 삶과 시가 붙어 있다는 데에 있을 것 같다

보통은 그렇게들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면 시인에 대해 사람들이 실망하겠지만. (웃음) 가능한 한 자기 문학과 삶을 일치시키도록 노력은 하지만, 일치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인 나는 더 맛있는 걸 먹고 싶고 더 안락한 집에서 살고 싶고 더 좋은 차를 타고 싶은데 시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양식인 고로 완벽한 일치는 사실 힘들지도 모른다. 내가 쓴 시 중에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가 있다. 그 시를 읽은 사람들은 이 시를 쓴 시인은 아마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람일 거라고, 늘 희생하고 다른 사람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솔직히 그렇진 않다. 내가 휴대폰이 없다. 나 편하고자 없는 건데, 이것만 봐도 이기적이다. 그런 어긋나는 지점들이 있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언어로 보여주는 사람이거나 보통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은 척 하면서 보여주는 사람인 것 같다.

 

꼭 그 일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닌 것인가

내 경우에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에 교사를 하다가 해직된 경험이 있다. 4년 반 동안 전교조 해직 교사로 있었는데, 그때는 어떤 식으로든 시와 삶을 일치시켜 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던 시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시와 사람을 따로 놔두자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근접해가도록 노력할 뿐이지 완벽하게 일치하는 시인은 없다고 생각한다.

 

시는 중요하고 무용한 것인 것 같다

그렇다. 실용주의의 반대편에 있다. 실용주의라는 게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제해야 할 가치는 아니지만, 하여간에 시가 있는 지점은 그런 쪽 같다. 아주 현실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낭만적이지도 않은 어떤 지점. 또 아주 성스러운 것도 아니면서 아주 속된 것도 아닌 지점. 그러니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사이, 실용과 낭만의 사이,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의 사이쯤에 시가 있는 것 같다.

 

스스로 그런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시 자체는 계속 보이지 않는 것 쪽으로, 낭만 쪽으로, 성스러운 것 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시인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은 ‘이쪽’이지 않은가. 시가 너무 멀리 저쪽으로 가려고 하면 이쪽으로 자꾸 잡아당기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다. 또 시인이 너무 현실에 빠지거나 속물이 되려고 하면 시가 시인을 잡아당긴다. 그런 관계인 것 같다.

 

열 번째 시집 『북항』을 읽었다. 짧은 문학적 소견으로 편히 얘기한다면, 시집의 첫 번째 시가 ‘일기’이고 마지막 시가 ‘다시 쓰는 창간사’인 것이 유의미하게 느껴졌다. 둘 다 현실적이긴 한데, 마지막 시는 현실참여적으로 느껴지고 첫 번째 시는 시인의 삶을 얘기하는 듯했다. 그래서 그 둘 간에 갈등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이번 시집의 시들은 이명박 정부가 시작하면서부터 끝나갈 때쯤 동안에 쓰여졌다. 이 정부를 어떻게 한마디로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민주주의나 남북의 화해 무드 같이 지금까지 우리가 힘들게 쌓아 놓은 좋은 가치들을 거꾸로 돌리는 정권인 것 같다. 나는 문학을 시작하던 습작 시절부터 어떻게 하면 내가 쓴 시와 현실을 결합할 것인가를 고민했었다. 나는 80학번인데, 80년대는 군사정권 시절이었기 때문에 나를 비롯해서 시대적으로 민주화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시인들이 그런 현실 문제들에 대해 쓰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왔다. 정권이 바뀌고 어느 정도 민주화가 되면서 시인이 꼭 현실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세상은 어느 정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MB정부 이후 시인들이 다시 그 역할을 해야 되는 영광이 주어진 거다.

이 같은 문제들을 20년, 30년 전 방식으로 표현하고 발언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를 테면 4대강 사업을 반대한다는 내용을 날것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시가 아니지 않은가. 시가 시라는 양식으로 발언하려면 방법적인 모색을 해야 했고, 그런 고민들이 많았던 시들이다.

그리고 첫 번째 시를 비롯하여, 이번 시집에는 그늘이란 말이 많다. 나무가 하나 있고 그늘이 하나 있을 때, 사람들은 나무만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해가 쨍쨍한 날 그늘이 없는 나무가 있다면 이는 온전한 나무가 아닐 것이다. 그동안은 나무를 주체로 파악하고 그것을 관찰하는 것이 시인이나 우리들의 일이었다면, 햇볕의 반대쪽에 있는 그림자나 그늘을 들여다보는 일 또한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모닥불』 창비 / 1989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 1994

『그리운 여우』 창비 / 1997

『그대에게 가고싶다』 푸른숲 / 2002

『바닷가 우체국』 문학동네 / 2003

『서울로 가는 전봉준』 문학동네 / 2004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창비 / 2004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문학동네 / 2005

『간절하게 참 철없이』 창비 / 2008

 

 

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하실 것 같다

종전의 얘기와 좀 겹치는데,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시가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들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식의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 같은 것을 시가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현실에 대응하는 양식으로서의 시. 그런 거 아니겠나.

 

많은 시들이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았다. 그만큼 다가가기 쉬운 면도 있었고. 이런 점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쉽다, 편하다, 따뜻하다, 투명하다’와 같은 말을 수십 년 동안 들어와서 그게 좀 싫었다. 시를 쉽게 쓴다, 시를 우습게 본다, 독자들의 입맛에 맞는 팔리기 위한 시만 쓴다는 식의 오해들이 복잡하게 생겨나기도 한다. 이번에는 나도 어려운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진짜 많이 했다.(웃음) 꼭 투명한 것만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불투명한 것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전에 비해 어려워졌다고 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내심 ‘흐흐, 작전에 말려들었군’ 한다.

 

이번 시집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열 번째이기도 하고, 이제는 시를 그만 써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있고. 편수로 한 천 편 정도 썼다. 다른 작가들도 그렇지만, 시인들은 새로 책을 낼 때마다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좀 있다. 혁명적으로 바뀌면 좋지만 그렇게는 잘 안 될 것이고, 쇄신이 되든 갱신이 되든 간에 그 이전보다는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시를 쓴 30년이라는 시간을 돌이켜보면 커다란 변화들이 있었을 텐데, 그런 세월 동안 시를 쓰다 보면 자기가 쓰는 시가 자기를 바꿔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말은 이렇게 하고 나면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지만 시와 글이라는 것은 남아 있지 않은가. 내가 쓴 글이 내가 앞으로 갈 길을 가르쳐 준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한다. 내가 쓴 글 속에는 내 장점과 약점, 허방, 이런 모든 것들이 있다. 내 글이 나를 가르친다고 강력하게 믿는 편이다.

 

화가나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의 원천에 대해 묻곤 하는데, 시인은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는 데 있어 깨어있는 눈을 가져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유년과 어린아이를 간직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고

나는 여전히, 책에서 얻는 게 많다. 다른 시인들의 시를 많이 읽는다. 책이라는 것은 내가 무엇이 되기 위해 준비할 때 읽는 게 아니고 무엇이 되고 나서 그 무엇을 잘 하기 위해서도 늘 가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시를 쓰는 사람이니까, 최대한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확보하려고 한다. 살다 보면 그러기가 힘들지 않은가. 직장 생활도 해야 하고, 집에 가면 가장이고. 혼자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어떤 천진함의 눈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이 자꾸 나이는 먹어가는데 어린이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대신 세상이 요구하는 질서의 뒤쪽을 자꾸 바라보는 거다. 그 눈은 어깃장 내지는 엉뚱함에서 나오는 것 같다. 아이들처럼. 빨리 가자고 하면 천천히 가고, 다들 빛나는 것을 좇아가면 낡은 것도 바라보는 데서. 하나 더 덧붙이자면, 사람을 만나거나 사물을 볼 때 그 대상에 대해 연애감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 나무도 연애감정을 가지고 보면 그 나무가 달리 보인다.

 

 

* 기사의 전문은 <지콜론> 8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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