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Interview - 이성표

g: Special Feature

에디터. 박선주

 

일러스트레이터

이성표

 

그림이 세상과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고 믿는 일러스트레이터. 홍익대 시각디자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중앙일보 출판국 미술기자를 거쳐 동서울대학 광고디자인과 교수,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겸직교수를 지냈다. 1982년 잡지 <마당>에 일러스트레이션을 기고하면서 데뷔, 지금까지 한국의 수많은 신문, 잡지, 단행본, 그림책, 기업광고 등에 작품을 발표해왔다. 2004년 안식년 기간 중 뉴욕의 SVA(School of Visual Arts), 프라비던스의 RISD(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2005년 그림책 『호랑이』로 한국출판문화대상을 수상했다. 2007년 스위스의 오래된 신문 <Neue Zürcher Zeitung>이 그의 그림을 10장 이상 사용함으로써 유럽에 알려졌다. 2008년 작품집 『이성표』에 이어 2009년 에세이집 『런치타임』을 출간했으며, 2011년 <인생>을 제목으로 개인전을 가졌다.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는 한편,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HILLS)에서 ‘내 목소리로 말하기’를 강의한다. 수유리의 북한산 국립공원 옆에서 그래픽디자이너인 아내 이환임과 함께 작업하며 살고 있다. www.leesungpyo.wordpress.com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게 편하신가요

권혁수 선생이 전부터 일러스트레이션은 태도이지 장르가 아니라고 했는데, 요새 들어 그 뜻을 좀 알 것도 같아요. ‘Illustration’의 ‘lus’는 빛이라는 뜻입니다. 어원으로 보면, 빛을 옮긴다, 빛을 가져가 깜깜한 곳을 비춰준다는 뜻이 있어요. 반짝이게 하니까 장식한다는 의미도 있고, 비춰주니까 밝게 드러낸다는 뜻도 있죠. 정신을 밝게 한다는 의미에서 계몽한다는 뜻도 있고요. 실제 서구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이 의미에 얼마나 주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시절 저와 제 친구들이 이 어원적 의미를 알았을 때는 감동이 정말 컸습니다. 아, 그냥 그림이 아니구나. 그것도 내가 광이 나는 게 아닌, 어딘가에 빛을 비춰주는 그림이구나. 그러므로 마음에 빛을 비추는 그림, 소외되고 감춰진 것을 세상에 드러내는 그림, 나만 갖지 않고 나누는 그림이 바로 일러스트레이션이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데뷔한지 30년이 지났어도 저는 그 생각을 여태 붙잡고 있어요. 뭐 그리 진지하냐고 놀리는 후배도 있지만, 그런 생각을 자꾸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우리 삶이 수상했기 때문입니다. 그 어원을 계속 비춰보지 않으면, 삶도 그냥 쉽게 흘러가 버리고 말 것만 같았습니다. 데이터로 넘겨준 나의 그림들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내 그림은 궁극적으로 누구와 만나는 건가, 책에 실린 내 그림들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이런 질문들을 하며 지금까지 왔습니다. 제가 일러스트레이터로 사는 한 이런 의심들을 거두고 싶지 않습니다.

백년 후의 역사가들이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집단을 어떻게 정의하게 될까요? ‘21세기 초에 그림을 잘 그리는 집단이 있었는데, 그들은 고객이 그려달라는 대로 멋있게 그려주며 돈을 벌었다’고 하면 좋을까요? 이런 정의를 저는 결코 바라지 않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저의 인생도 그렇게 정의되고 싶진 않고요. 그러니 자꾸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요.

 

누워있는 돌

종이에 아크릴릭 수채

 

 

어떻게 보면 詩도 태도인 것 같아요. 간결하고 여백이 있으며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선생의 작업이 시와 닮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95년도쯤 『그림으로 만든 詩』라는 책을 만든 적이 있어요. 희게 빈 페이지들이 진행되다가 가끔 그림이 나오는 책이었어요. 여백의 페이지를 넘기다 그림이 나오면 시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하며 만든 책인데, 뭐 잘 팔리지도 않았고. (웃음)

제게 있어 시인들은 거의 예술가의 대표 격으로 여겨집니다. 삶과 예술의 경계선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시만 써서는 경제적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지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첨예한 언어를 찾아낼 수 있고 그런 문장을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감독도 마찬가지지요. 대박이 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데도 자꾸 뭔가 의미를 말하려는 사람들, 팔기 위해서는 포장을 해야 하는데 그런 거 없이 적나라하게 삶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감독들이 있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은 아무래도 대체적으로는 상업적인 편에 속해있다고 해야 할 겁니다. 저도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며 돈을 받은 지가 이제 31년이 되었어요. 그러나 아까 얘기처럼, 제 일러스트레이션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마음을 떨치고 그저 일만 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런 불안감이 제 그림을 시처럼 보이게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원래부터, 문장의 모든 것을 그리는 산문적 표현에는 흥미를 못 가졌습니다.

그림책 작업은 더 어려웠습니다. 아이들에게 너무 간결한 것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속이 밝고 재미난 것들로 가득 찬 아이들에게는 같이 막 놀면서 재미있고 따뜻한 것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소통의 지점이 저에게는 어려워요. 이수지 작가는 간결하면서도 마음을 소통하던데… 전 실력이 떨어지는 거죠. (웃음) 이제껏 제 작업의 대상은 늘 성인들이었어요. 지금도 어른을 위한 그림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경계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요. 순수미술과의 차이에 대해 물으려다 말았습니다만,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것이 일러스트레이션의 매력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마지막까지 견지할 수 있는 덕목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대중을 향한 적극적 태도일 거예요. 어쩌면 그게 순수미술과의 본질적인 차이일지도 모르겠어요. 현대미술도 대중과의 소통을 중시하며 그 간격을 좁혀가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순수미술 쪽 작품들은 다중보다는 소수의 집단과 거래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비해 일러스트레이션 산업은 그야말로 대중(mass)과의 승부에요. 우리는 편집자나 클라이언트와의 민감하고 복잡한 신경전을 치러야 하고, 또한 그 모든 피로와 불쾌감을 넘어 끝내 대중에게로 다가가야만 합니다. 한계이자 어려움이기도 한 이 경계에 일러스트레이터의 직업적 덕목이 있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떠날 수 없는 두 가지가 ‘대중’과 ‘복제’예요. 멋있게 말하면 그걸 빛을 나눈다고 하는 거겠지요. 이상적으로 말하면, 일러스트레이터는‘저기’를 바라보며 무엇이 빛인지를 찾아야 하고, 빛이라고 생각되는 그것을 가져와 ‘여기’의 사람들과 나누는 직업인 것 같아요. 그 모든 과정을 클라이언트와 출판사와 미디어의 리더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내려가는 계단

종이에 아크릴릭 수채

 

 

 

마네킹 뒤태

종이에 아크릴릭 수채

 

 

혼자 존재하는 일러스트레이션 작업과 텍스트와 함께 들어가는 작업은 그 접근 방식이 서로 다를 것 같습니다. 그림책 『별이 좋아』, 『야, 비 온다』에서 그림이 텍스트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합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텍스트가 있는 경우 저자의 생각과 함께 가야 하지요. 이미 텍스트가 독자와 소통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림이 함께 갈 때에는 그림의 역할이 무엇인지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저의 경우, 처음부터 글을 재현하는 그림은 그리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자의 메시지를 공유한 후, 그 메시지를 마음에 품고 그림은 다르게 그렸습니다. 그렇게 되면 독자는 두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게 됩니다.

저만의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것은 사실 거의 없어요. 늘 클라이언트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다행히 운이 좋게, 제 영역을 인정해주는 클라이언트들을 많이 만났어요. 대부분의 경우 사전에 스케치를 보길 원하는데 그런 조건에서는 아이디어가 위축된다고 어필했지요. 많은 분들이 제게 자율적 무대를 주셨습니다. 그렇게 만나서 9년을 함께 일한 클라이언트도 있어요.

홈페이지에는 지난 30년간 잘 그린 것만 골라 올렸으니, 사실 수준이 높은 것처럼 왜곡되어 있지요. 지금까지 이천 장 넘게 그렸을 텐데 홈페이지에는 100장이나 올렸을까요? 안 올린 그림들 중에 못 그린, 이상한 그림이 아주 많습니다. (웃음) 『별이 좋아』는 재스퍼에 있을 때 그렸는데, 외국에 멀리 떨어져 있으니 편집자가 많이 봐주었지요. 거의 처음 그린 그대로 출판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궁금합니다. 한 길을 걸어오신 것 같아요

어릴 때는 화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가 반대하셔서 시각디자인 전공으로 진학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시각디자인과에 가서 또다시 그림을 택한 거죠. 졸업하고 중앙일보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만 2년 만에 그만두었습니다. 하루 종일 회사에 있다가 조금 남은 시간에, 기껏해야 쉬는 날에나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으니, 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에 모든 시간을 통틀어 바치지 못할까 하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요즘은 자신의 길을 가는 선택을 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경제 상황이 워낙 어려워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생각보다 길어요.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지금 무엇을 시작해도, 혹은 몇 년 후에 시작해도 별로 늦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원하는 그것을 하시기 바랍니다. 팔십 넘은 노인만 아니라면 목표를 이룰 충분한 시간이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선생님으로서 젊은 학생들을 많이 만나실 텐데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혹 없으신지요

나는 청년들을 정말 좋아합니다. 요새 젊은 친구들이 변했다고들 하는데 내 보기에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 같아요. 몇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갖고 있는 고민도 같고요. 삶의 원칙도 사실 변한 게 없어요. 예를 들어, 배우자의 스펙이나 돈, 집안 환경, 현재 직업 같은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게 본질은 아닙니다. 배우자감은 정직해야 되고, 성실해야 되고, 돈보다 상대를 사랑할 줄 알아야합니다. 젊은 청년들은 누구나 다 미완인, 어설픈 상태입니다. 혹 지금 좋은 자리에 있더라도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시간이 있고요. 그래서 현재 직업 같은 건 그렇게 대단히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얘기는 우리가 이미 다 책에서 배운 것입니다. 그것이 맞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당신들이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것이 옳다고요.

세상을 살려면 약삭빨라야 할 것 같지요? 아닙니다. 그런 건 눈속임에 불과해서 사람들이 다시 속지 않습니다. 오히려 옳은 길을 추구하고 있으면 언젠가 사람들이 그걸 알아줍니다. 직속상관이 알고, 그가 모르면 회사의 보스가 알고, 그들이 모르면 적어도 신께서는 알지요. 신 어쩌고 해도 허황된 얘기가 아니에요. 누가 정직한지, 누가 입이 무거운지, 누가 묵묵히 자기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지를 꼭 다른 사람이 알아봅니다. 이건 상식이고, 단순한 진리예요. 이것만 잘 지켜도 갈 길이 열리는데, 젊을 때는 그걸 확신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제가 사십대 초반이었을 때, 사는 만큼 살았고 사회 경험도 꽤 했는데 옆구리 한쪽에 의구심이 떠나질 않았어요. 거짓말도 하고 권모술수도 좀 써야 진짜 살아남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다 어느 날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거기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덕목들을 견지하며 큰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각성과 함께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젊은이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그대가 배운 것이 옳습니다. 세상을 풍미하는 잘못된 교훈들에 휩쓸리지 말고, 굴복하지 마십시오.

 

 

물 같은 그림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신 말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작업을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예술적 성취를 이루고 싶은 건 당연하지만, 내 그림이 ‘나’ 정도를 배설하고 보여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쓸 만한 무엇이 되었으면 해요. 누군가에게 작은 소용이 될 수 있는, 유용한 그림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생각이 제겐 가장 중요해요. 너무 꾸미거나 되바라지지 않은 그림, 과장되지 않고 진솔해서 마음에 와 닿는 그림을 그릴 수는 없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푸른 얼굴 초상

종이에 아크릴릭 수채

 

 

* 본 기사의 전문은 <지콜론> 7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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