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일상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일상의 디자인』 진선태 저자와의 만남

대전에 있는 직장에 다니시느라 한 달에 한 두 번 서울을 올라오시는데 이번에 특별히 저희 지콜론과의 인터뷰를 위해 상경하셨습니다. 직접 들려드리지 못하는게 정말 안타까울 정도로 부드러운 음색과 차분함을 지니신 저자 진선태 님- 차 한 잔과 더불어 여유있고 편안했던 시간이었고 편집자로서, 독자로서 다시 한 번 책을 음미할 수 있었던, 기분 좋은 인터뷰였습니다. 

에디터 홍윤표


먼저, 저자님의 이력이 조금은 이채롭습니다. 현재 특허청에 계시는 것으로 아는데 하시는 일에 대해 간략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대전에 있는 특허청에서 디자인 심사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특허청에서는 특허, 실용신안, 상표, 디자인 이렇게 네 가지 권리에 대해서 심사를 하고 있는데, 저는 디자인특채로 특허청에 들어와 현재 디자인심사관으로 있습니다. 디자인이 출원되면 그 디자인에 대해 도면, 창작성, 신규성 등에 대한 실체적인 내용을 심사하여 등록될지를 결정하는 일을 하죠. 특허청에는 저 말고도 약 40여 명의 디자인심사관이 1년에 약 6만 건 이상의 디자인을 심사하고 있습니다.


저자님이 쓰신 책의 ‘머리말’에 보면, 사물을 보는 작은 호기심에서 출발하여 이 책을 기획하게 되셨다고 하셨는데 아직 이 책을 못 보신 분들도 계실 테니 그 기획배경을 한 번 부탁드립니다.

일상의 디자인이란 화두로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벌써 10년이 넘은 것 같네요. 대체로 디자인이라 하면 TV를 통해 볼 수 있는 디자인,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제품, 멋지고 세련된 이미지의 것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생활하면서 일상주변을 조금만 주의 깊게 둘러보면 정말 많은 물건이 ‘일상의 디자인’이란 이름으로 불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차가 주차하지 못하게 만든 시멘트를 채운 타이어라든지, 동네마다 형태가 다른 의류수거함, 시장 상인들이 쓰는 물건좌판대 등 흥미로우면서도 기발한 디자인을 정말 많이 볼 수 있거든요. 재미있는 아이디어와 위트가 담긴 이러한 물건들을 하나하나 보다가 문득, 디자인연구자의 관점으로 이 물건들을 해석해 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바로 이 책의 시작이었습니다.


책에는 저자님이 말씀하시는 이론적 배경을 실생활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례를 수집하기 위해 직접 찾아다니시면서 일일이 찍으신 것인가요?

제가 대학 강의와 연구를 하던 시기에 일명 ‘버내큐러 디자인’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후배와 같이 옛날 동네나 시장 등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평소에 주변에서 디자이너의 손을 거치지 않은 물건들을 사진으로 찍었어요. 외국에라도 나가게 되면 그곳에서도 연장선 상에서 재미있는 사례들을 모으게 되었구요. 그럴 때마다 든 생각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필요한 물건을 직접 고안하여 만드는 문화를 보면서, 공통의 디자인능력이나 디자인유전자가 존재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을 제 박사학위논문에서는 ‘사용자디자인암묵지’라고 정의했는데, 이러한 확신은 나중에 이론으로 정리하였고, 이 책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책을 정리하시면서 '와, 이런 아이디어는 정말 전문가는 생각 못했을 텐데...'라는, 기억에 남는 디자인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지금 생각나는 건 어떤 할아버지가 카 오디오를 자전거에 단 장면이에요. 동대문 근처라고 기억되는데, 보통 자전거에는 라디오나 오디오, 스피커 등이 부착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음악을 들으시는 게 좋으셨나 봐요. 그러다 우연히 또는 의도적으로 중고 카오디오를 구하시고 자전거에 부착하시면서 당신이 원하는 음악이나 라디오 방송을 마음껏 들을 수 있으셨겠죠. 이렇게 생활 속에서 필요한 욕구를 자신의 아이디어나 지혜 등으로 채워 가는 일련의 방법이나 수단이 바로 일상의 디자인과정이라 할 수 있어요. 물론 할아버지가 만든 그 자전거 오디오의 외관은 좀 부피도 크고 세련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할아버지의 생활장면에 가장 잘 어울리는 훌륭한 디자인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을 그리 오랫동안 기획하시고, 발로 뛰어 사례를 모으고, 이론적 근거를 통해 글을 완성해 가시면서, 저자님이 독자들에게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우리가 ‘디자이너’라든지 ‘디자인’이라고 하면 어떤 환상이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아스팔트 위의 사나이’라는 드라마에서 배우 이병헌이 자동차디자이너로 나왔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당시에 디자인이란 직업을 이상적이고 폼이 좀 나는 그런 직업으로 그려졌던 기억이 납니다.

‘디자인’이란 단어가 지금은 사회 곳곳에서 낯익은 단어가 되었지만, 일상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디자인에는 전문디자이너가 만든 물건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이 디자인한 물건도 공존한다는 사실이죠. 일반 사람들이 만든 일상의 디자인은 전문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물건보다는 당연히 엉성해 보이고 허술하지만, 분명히 이끌리는 부분이 있어요. 그건 바로 일상의 디자인은 우리 실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기성품이 채워 주지 못한 기능과 욕구를 채워주면서도, 사용자에게 실생활에 밀접한 경험을 가져다준다는 것이죠.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일상의 디자인은 우리의 실생활과 아주 가까운 디자인입니다. 일반인이 창조하는 디자인은 매일매일 생활하면서 실행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도구를 만들어 쓰는 창작 활동 속에서 디자인 원리를 깨달아 왔습니다. 체기가 있을 때 바늘로 손가락을 따는 것처럼 디자인하는 방법이나 원리가 평범한 일반인에게 생활의 지혜처럼 주어졌다는 사실이죠. 사람마다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나 디자인능력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디자인에 관련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인이 만든 디자인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 디자인이 나오게 된 배경이나 사연 등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한 디자인이 나오기까지의 배경과 과정을 알 수 있다면 일상의 디자인은 매혹적인 디자인소재가 됩니다. 특히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그렇습니다. 단순히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쥐어짜 창작한 디자인보다는 그 디자인이 만들어진 동기나 사연, 배경 등을 이해하고 디자인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디자인결과물은 마치 어머니의 따듯한 밥상을 받는 것처럼 인간미가 넘칠 테니까요.


끝으로, 저자님이 생각하시는 '일상의 디자인'에 대한 정의를 부탁드립니다.

이 책에 나오는 문장 중 하나인데, “일상은 기업에서 생산한 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공간이지만, 사용자가 기성품의 의미를 자신만의 해석으로 비틀어 내는 공간이기도 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빌려 얘기하자면, 이 문장에서 앞쪽은 ‘소비사용’의 공간을 말하고, 뒤쪽은 ‘생산’의 공간을 말합니다. 일상은 이렇게 소비사용과 생산 두 가지가 함께 존재하는 공간입니다.

일상은 전적으로 생산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용과 생산이 연결된 공간이어서, 이 안에 살아가는 사용자가 자신의 아이디어와 능력으로 적절한 쓰임새에 맞게 디자인하고 이 물건을 사용하는 과정이 바로 ‘일상의 디자인’인 것입니다.

 



저자소개

진선태

서울과학기술대에서 공업디자인을 전공하고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성균관대 크리딧츠연구센터에서 공학, 심리학, 디자인이 연관된 다학제연구의 전임연구원이었고, 서울과학기술대, 한성대, 공주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특허청에는 디자인특채로 입문하여 상표디자인심사국 사무관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현(現) 한국디자인학회이사이다.
디자인창의성, 사용자생산디자인, 디자인방법론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왔으며, 저서 및 논문으로는 <아이디어발상의 끝은 없다>, <사용자의 디자인행위에 관한 탐색적 프로토콜분석사례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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