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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포그래피 송시



김현미 지음



조우




‘타이포그래피 송시Ode to Typography’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리즈디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유학시절이었다. 2년 마다 열리는 그래픽디자인 학부 과정의 한 전시회에서 여백이 아름다운
책 디자인들이 시선을 끌었다. 그곳에서 ‘Ode to Typography’를 텍스트로 하여 이미지와
타이포그래피의 흥미로운 결합을 탐구한 3학년 타이포그래피 수업 과정의 결과물을 볼 수 있었다.
타이포그래피 자체를 주제로 한 시가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보물을 발견한 듯했고
그곳에서 알게 된 파블로 네루다Pable Neruda, 1904-1973라는 시인의 이름과 함께 마음속에
담아 두게 되었다. 당시에 시작된 내 논문의 주제는 ‘시각언어의 시적詩的 가능성’으로
문학 형식으로서의 시로부터 출발하여 사진 이미지, 소리, 공간 등 다른 언어를 통한 경험에서
시적 경험이라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있었다. 마지막 학기를 남겨놓은 겨울방학에
지도교수였던 톰 오커스Tom Ockerse 교수님은 “네가 보면 좋을 영화가 있다”며 권해주셨다.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는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그 영화는 마음속에 이름을 기억해 두었던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소재로 한 영화였다.


파블로 네루다는 노벨상 수상에 빛나는 칠레의 시인이자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회주의 정치가였다. 그가 가진 사회주의적 정치성향과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두려워한 칠레의

권력부로 인해 그는 많은 세월을 망명생활로 보냈는데, 그 가운데 1년간을 이탈리아 카프리 섬에 있는

지인의 별장에서 보낸 적이 있었다. 영화 <일 포스티노>는 칠레의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Antonio Skarmeta가

네루다의 망명생활을 소재로 한 소설,『네루다의 우편배달부Ardiente Paciencia: El Cartero de Neruda』를 영화화한 것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마리오’는 어부인 아버지처럼 사는 것을 거부하는 백수 청년이다.

이들이 사는 작은 섬에 네루다가 체류하게 되었는데, 네루다의 유명세로 인해 우편물이 급증하게 되었고

마리오는 네루다만의 우편배달부로 일을 하게 되었다. 마리오는 시인 네루다와의 잦은 대면을 통해

‘은유Metaphor’에 대해 배우고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에 눈을 떠가며 시인과 친구가 되어 갔다.

마리오는 유명인사와 친구가 된 것과 네루다가 쓴 사랑의 시를 도용한 덕택에 자신이 흠모하던

마을의 미녀 베아트리체와 결혼을 하게 된다. 네루다를 통해 시를 배운 마리오는 후일에 소외된 어촌의

힘없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시인이 되었는데, 대규모 노동자 집회에서 민중을 위한 시를 낭독하던 중
집회를 무력으로 해산하려는 집단의 희생자가 되어 세상을 뜨고 만다.


당시 시적 표현에 대해 탐구하던 나에게 <일 포스티노>가 남긴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망명생활을 마치고 모국 칠레로 돌아간 후, 섬 생활을 그리워하던 네루다를 위해
마리오가 섬의 소리를 녹음하는 장면이었다. 투박한 마이크와 녹음기로 ‘벼랑 끝에서 부는 바람소리’,
‘성당의 종소리’, ‘고기잡이 배에 부딪치는 파도소리’, 심지어 ‘밤하늘의 별소리’를
녹음하던 장면은 ‘온 세상은 다 무언가의 은유The whole world is the metaphor for something else.’라는

영화 속의 메시지를 경험하게 하는 하나의 ‘영상 시’였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고양된 기분은

시적 경험의 보상이었고 모든 형태의 시는 세상의 불변하는 진리를 가리킨다는 시의 본질을 느낄 수 있었다.



블랙레터blackletter


얽어매어진 구텐베르그:
어둠 속 거미들로 가득한 집,
갑자기,
황금 글자가 창을 통해 들어온다.



중세 유럽에서 쓰던 글자체는 블랙레터였다. 최초의 인쇄본인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7-1468의 42줄 성경책은 당시의 손 글씨체인 블랙레터를 활자로 만들어 인쇄한 것이었다.
로마자 글꼴이 우리가 주로 보고 사용하는 ‘로만 서체Roman Type’로 그 판도가 바뀐 것은
르네상스의 영향이었다. 르네상스의 주역이었던 인문주의 학자들은 수세기 전의 고전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샤를마뉴Charlemagne, 742-814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표준 글자체, 즉 ‘카롤링 왕조의 소문자Carolingian minuscule’에 주목하게 되었다. 둥근 글자
모양이 부드러운 인상을 주면서 밝고 개방적인 지면을 만들어주는 이 글자체는 ‘화이트 레터’라는
개념으로 여겨졌다. 당시의 인문주의 학자들은 의식적으로 중세의 출판물과 결별하기 위해
책의 내용에서뿐만 아니라 형태적인 측면에서도 화이트레터를 선택하면서,
굵고 각지고 압축된 형태의 글자체에는 ‘블랙레터’라는, 다소 비하하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모순되게도 블랙레터의 모체 또한 카롤링 왕조의 소문자였다. 둥글고 개방적인 소문자가
특징인 이 유럽의 표준 글자체는 수백 년을 지나는 동안 기후와 민족성에 따라 각기 다르게
진화하여 서로 다른 형태의 손 글씨 블랙레터가 되었다. 알프스 산맥을 경계로 북쪽에 위치한
추운 지방의 국가들에서는 글자의 폭이 좁아지고 곡선의 글자가 끊어진 직선들로 표현되는
텍스투라Textura체로 변하게 되고, 남쪽에 위치한 따뜻한 지방의 국가들에서는 둥근 글자의 형태는

유지하면서 굵고 수직적인 로툰다Rotunda체로 변하게 되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형태의 블랙레터를 쓰던 유럽 국가들이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급속히 로만 활자체의

인쇄 풍경으로 변하게 됐다. 그에 반해 독일은 상황이 달랐는데 이는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개혁과 관련이 있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독일은 물론 유럽의 정치와 사회 전반에

큰 변혁을 일으켰다. 그는 개신교의 전파를 위해 라틴어로 되어있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고

이의 인쇄에 블랙레터 글자체 중 슈바바흐chwabacher체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로만 카톨릭의 성경책이

로만 글자체로 인쇄되는 것과 차별화를 두기 위함이었다. 집집마다 루터의 성경책이 하나씩은 전해 내려지면서

이 슈바바흐 글자체는 독일 국민에게 독자적인 독일성의 표상으로 각인되었다.
이에 앞서 1513년에 막시밀리앙 1세에 의해 프락투르Fraktur체가 만들어졌고 이 글자체가 블랙레터의

표준적 글자로 자리잡게 됨에 따라 슈바바흐와 프락투르, 이 두 가지 글자체의 양식은

독일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글자체가 되었다.
 

근대 독일 국가의 아버지인 비스마르크가 “나는 로만 글자체로 인쇄된 독일 책은 읽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특히 순수독일문학은 프락투르체로 인쇄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서자, 모더니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독일의 바우하우스가 산세리프 글자체의 사용을

주장하고 파울 레너Paul Renner, 1878-1956가 ‘푸투라Futura’체를 발표하던 시기에도 독일의 모든 책

57%와 잡지 60%의 본문으로 블랙레터가 사용되었으며 그 중 90%가 프락투르 계열이었다.

바우하우스와 얀 치홀트 등의 모던 디자이너들이 주창하였던 산세리프 글자체가 표상하는 것이 국제주의였다면

프락투르를 고집하는 것은 국수주의로 비쳐졌다. 한편 20세기의 블랙레터는 새로운 형태들로 풍년을 맞았는데

새로운 시대적 분위기와 유럽을 휩쓸던 예술장식운동 등의 영향을 받은 아름다운 글자체들이 등장했다.
아르누보Art Nouveau적인 곡선이 돋보이는 ‘에크만Eckmann’체, 블랙레터에 불어온 모더니즘을
느낄 수 있는 ‘베렌스Behrens’체 등이 그것이다.


히틀러가 ‘국민의 글자체’로 공표한 블랙레터는 한때 나치즘의 이미지이기도 했지만
1941년에 나치는 다시 공식적으로 로만 서체를 쓰기로 번복했다. 독일 역사 속 인쇄산업을 점령하고 있던

유태인을 들먹이며, 블랙레터가 유태인이 퍼뜨린 글자라는 터무니없는 오명을 씌우기도 했다.

실제 이유는 점령국에서의 문자 소통이 어려웠던 것 때문이었으면서 말이다.




루돌프 코흐Rudolf Koch, 1876-1934는 바로 이런 격변의 시기에 활동했던 활자 디자이너이다.
디자이너들에게는 기하학적 산세리프 서체인 ‘카벨Kabel’체와 아프리카의 이미지로 거의 고정된

‘노이란트Neuland’체 등의 디자이너로 많이 알려져 있었는데, 특히 노이란트체는 90년대의 블록버스터 영화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 1993>의 시각적 아이덴티티로 더욱 유명해진 바 있다.


루돌프 코흐는 30세가 되던 해에 오펜바흐Offenbach의 ‘클링스포어Klingspor’ 활자 주조소의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고 이를 평생의 일터로 수많은 글자체를 디자인했다. 그는
나치의 당원은 아니었으나 독일인으로서의 자부심과 블랙레터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그가 디자인한 글자체의 반 이상이 블랙레터였다. 그 중 하나가 네루다의 시에 활용된
텍스투라체, ‘빌헬름 클링스포어 고티슈Wilhelm Klingspor Gotisch’이다. 그는 “독일 글자는
독일인에게 내재된 사명감의 상징과도 같다. 독일인은 모든 문명을 가진 민족 가운데
삶의 모든 영역에서 독특하고 차별되며 애국주의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민족으로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탁월한 손 글씨의 감각으로 질서정연한 블랙레터
글자체들을 만들어 내면서도 시대적 흐름과 요구를 거스를 수 없어 산세리프 디자인으로
잠시 외도를 하기도 했던 그의 작업이력에서 당시 독일 글자 디자인계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블랙레터는 유럽 역사의 산 증인이다. 이제까지 블랙레터는 맥주병 라벨에서 독일성을 표현하고
헤비메탈 밴드의 앨범 재킷이나 문신에 사용되는 등 하위 문화에서 어둡고 장식적인 이미지,
금기된 이미지 등을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조금 다른 기류가
감지되었다. 활자 디자이너들은 포화상태라 여겨지는 로만 서체의 디자인으로부터 블랙레터의
영역으로 눈을 돌렸고, 이로 인해 다양하고 흥미롭게 개작되고 창작된 블랙레터 디자인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이는 디자이너 주디스 샬란스키Judith Schalansky가 집대성한
블랙레터 모음집 『내 사랑 프락투르Fraktur mon Amou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텍스투라, 로툰다, 슈바바흐, 프락투르 등 여러 양식에서 볼 수 있는 차별적인 블랙레터의
강렬하고 장식적인 글자 형태들은 새로운 시각적 표현의 보고이다. 원래 블랙레터는
기독교를 상징하는 중세의 글자였다. 블랙레터의 모든 양식이 독일성과 연관되지
않았음에도 히틀러와 나치즘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던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현대의
디자이너들은 이러한 글자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고정된 기호적 의미로부터 벗어나
블랙레터의 형태적 세계에 관심을 갖고, 그 세계를 좀 더 즐기면 좋을 것 같다.



- 위 내용은 『타이포그래피 송시: 시와 타이포그래피 이야기』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저자 소개


김현미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광고대행사 오리콤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근무했고 미국 로드 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서
그래픽 디자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민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2001년부터 삼성디자인학교(Samsung Art and Institute)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 『신타이포그래피 혁명가 얀 치홀트』,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33가지 서체 이야기』,

공저로 『타이포그래피 사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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