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과 기호로 읽는 디자인 이야기

팝과 펑크 _ 영국과 미국의 하위문화

 

 

천재희 간결성과 명확성이 두드러진 말끔한 디자인보다는, 생각을 자극하고 참여의 여지를 남기는 디자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 최신의 디자인 전문지를 보는 것보다 박물관 유리 너머의 ‘아주 오래된 디자인’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의 최신 버전을 사용할 때에도 가장 먼저 확인하는 일은 아주 오래된 구(舊)버전의 기능이 남긴 흔적을 찾는 일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의 조형 실험에 동참하고 디자인 이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위문화라는 용어는 진보적 개념이다. 진보란 무엇인가. 한국에서 진보라는 용어는 정치적인 성향을 의미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설명해야겠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진보란 단순히 보수에 대한 반대개념이 아니라 인류의 퇴보에 대한 보편적 대항 가치를 의미한다. 주류가 된다는 것. 그 힘을 유지하려거나 지키려 하다 보면 보수적이란 소리를 듣게 된다. 무엇이든 너무 지나치게 되면 그것에 저항하거나 거부하려는 움직임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그러한 새로움 내지는 꿈틀거림을 ‘진보’라고 구분하는데, ‘주류는 곧 보수’라는 공식에서 진보는 늘 하위개념이 된다. ‘하위문화’는 ‘진보’라는 거대한 은하수 안에서 반짝이는 무리들 중 하나이다. 주류가 만들어 가고 지켜가는 전통의 기준에서 볼 때 얼마만큼 다른가에 따라 저항의 정도가 달라지기만 할 뿐, 하위문화라는 용어의 정의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공감하기에는 조금, 어쩌면 많이 어려운 가치들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러한 정신을 생활 방식이나 태도로 그리고 음악, 패션, 미술이라는 문화적 행위로 이끌어 나간다. 하위문화의 개념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인구 이동과 도시 노동자 증가와 같은 현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싹튼 생활양식으로, 서구의 엘리트 백인 남성의 가치관과는 매우 거리가 먼 노동자, 유색인종, 동성애의 문화를 가리킨다.

 

최근 영미의 학자 켄 겔더가 정의한 바에 따르면, 2000년대까지 지속되고 있는 하위문화에 대한 구분은 다음의 여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노동이라는 개념과 거리를 둔다_ 자신의 일이나 작업을 놀이, 여가라는 개념에 가깝게 여기기 때문이다. 2)계층에 대한 분명한 소속감을 드러내길 거부한다_ 진보이기 조차 거부하기도 한다. 3)자신이 소유한 것보다 현재 활동하는 영토적 개념이 강하다_ 이를 테면, 거리, 클럽, 한국에선 홍대 문화에서 쓰이는 용어들. 4)가족이나 친지의 관계보다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단체 속에서의 정체성이 강하다. 5)자신을 나타내기 위하여 과장되거나 과격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6)대중사회와 일상의 지루함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기 위하여 선택한다.

이상 여섯 가지의 어려운 생각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위문화의 생산자들이다. 그렇다면 “나는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도 생활이 하위문화”인 사람들은, “뭐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는가”라고 되물을 수도 있다. 그렇다. 그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과 기록하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이 양자는 대화가 필요하다. 이점은 처음에 이야기했던 진보와 보수의 또 다른 관계이며 순환이다. 일부러 편을 가르고 사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끊임없이 이분법과 양극단적인 정체성 찾기의 여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그렇다면 ‘하위문화’를 이끌고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먼저 하위문화에 대하여 접근하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점은, 이 용어가 영미 문화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영국에서 시작된 하위문화의 저변에는 계층의 갈등이 숨어있다. 국은 왕을 섬기고 귀족이 존재하는 나라다. 역사적으로 계급적 문화적 계층이 지속적으로 구분되었던 영국에서 전쟁 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전개되면서 청소년들이 새로운 노동 계급의 문화적 정체성을 나타내게 되었다. 전쟁이라는 폐허 더미위해서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사람과 지켜가는 사람들의 가치의 문제는 첨예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전통을, 변화된 사회에서도 그 전과 다름없이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지키려는 자들의 도구로 여기면서 소수의 청년들과 도시 노동자들은 순응보다 저항을 택했다. 백인 청년과 흑인 청년의 갈등과 결연, 그리고 새로운 이민족들의 출현으로 하위문화는 더욱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당시에 영국 도시의 거대한 흐름은 모드족과 록앤롤족이 주도하였다. 이 흐름은 60년대 미국의 반문화적인 청년 운동과 힙합문화-애시드 하우스-와 연결되면서 70년대 펑크로 궤적을 잇게 된다.(흑인들의 Funk와는 다르다) 공간적으로는 런던의 East End를 중심으로 스킨헤드, 테디보이, 그리서, 록커와 같은 그룹들이 생성되었다. 도시 부족처럼 자신들의 집단을 패션으로 드러내면서 더욱 독특한 이미지로 음악과 미술로 소비문화와 함께 대중에게 수용되었다. 이렇게 펑크, 록, 히피 문화는 영국과 미국 젊은이들의 하위문화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에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 전 세계적인 대중문화를 이끌어가는 큰 줄기들이 바로 하위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중문화, 대중음악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새로운 하위문화들의 양상을 볼 때 펑크와 록은 대중문화의 ‘주류’인 셈이다. 이 영원히 철들지 않는 문화는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인 문화의 틀로 남아 끊임없이 저항하고 도전하는 인간들이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양식을 제공하고 있다. 사람이 변하지 않기란 어렵지만, 문화는 상징적으로 남아 정신을 계승하고 변하지 않으려 한다. 하위문화란 이렇게 새로운 집단이 자생적으로 일구어 낸 젊고 새로운 문화를 뜻한다.

 

이러한 하위문화는 지배 문화 혹은 부르주아, 기성세대들의 문화에 대한 갈등과 반목을 통하여 다양한 차이를 생성하였고 대중문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흡수되었다. 딕헵디지는 이 문화에 대한 의미와 가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그것이 비록 상품 형식으로 획일화된 하나의 유행성 라이프스타일일지언정 그 안에는 기성문화에 대한 식상함, 윤리적, 법적, 제도적 규범들의 획일성에 대한 거부가 무의식적으로 잠재되어 있다.”(『하위문화–스타일의 의미』 현실문화연구, 1998) 기록되지 않았거나 표현되지 않았을 뿐 세상은 우리가 사는 지금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이들의 갈등이 반복되어 왔다. 남과 여, 왕과 신하, 주인과 하인, 개와 고양이, 아버지와 아들 등. 반항하고 싶은 마음, 저항하고 싶은 마음은 특히 청소년과 청년들의 본질이 아닐까. 부모로부터 다른 정체성을 찾으려 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렇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비슷한 감성과 가치를 공유하며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하위문화’라는 용어 자체가 어떤 위계적 의미를 나타내듯이 ‘문화’라는 말과 구분되어 명명되었으나 그것은 청년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기준에서 비롯된 것이지 양식적이나 의미적으로 열등하다는 뜻은 아니다. 하위문화는 오히려 문화적으로 풍부한 환경이 부족한 한국에서는 오히려 주류에 가깝다. 특히 영미의 하위문화는 미국의 대중문화와 함께 수입되어 한국의 엘리트들도 선호하는 문화이며 소비사회에서 빠르게 번지며 유행되고 있는 스타일의 중심에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영미의 하위문화를 토착화시켜서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것은 국제화된 세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전통은 지켜야 할 그 무엇보다 더욱 멀지 않은가. 우리가 계속했던 문화, 우리 모두가 함께했던 문화의 기억이 우리에겐 없다. 박제된 유품처럼 남은 궁궐과 민중의 무대에서 쓰였던 탈은 스타일로 남아 기념품처럼 차용되기만 할 뿐 그 정신을 불러들여 공감하기엔 거리가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얇고 빈약한 주류의 문화층 밑에 거대하고 기운 센 하위문화가 있다.

 

하위문화는 주변화 된 가치와 윤리적으로 문제시 되는 행위와 함께 동시대의 지배적인 문화적 형식과는 다른 새롭고 이질적인 문화로,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형식으로 저항을 표방한다. 새로움을 추구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지향하는 문화는 매우 건전하다. 오타쿠적인 문화도 좋고 공동체적인 문화도 좋다. 젊은 문화적 양식들도 성숙하여 나이가 들면서 또 다른 고전이 되는 것처럼 문화는 사람이 만들어 나가면서 계속된다. 사람과 함께하는 문화여서 의미가 있고 소중하다. 소비와 함께하는 문화가 아니라 하루하루 시간과 공간과 함께하는 삶의 지층들이 아로새겨지는 문화를 자꾸 알리고 서로 알고자 노력한다면, 그 문화를 더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다면, 그만큼 우리는 더욱 젊어질 것이다. 보수와 진보, 주류와 비주류라는 이분법적인 극단의 구분 이외에 우리는 그저 너와 나로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1960년대 런던의 펑크족

가죽점퍼와 징을 박은 군인화. 스킨헤드와

같은 패션은 저항 이상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

젊은이들은 이들의 도시 감성의 댄디함과 불량스러움, 행동과 노래에 열광했다.

DJ 아프리카 밤바타와 DJ 유타카(2004)

디제잉은 새로운 예술장르이며 디제이예가 이다. 국적을 넘어선 언어 이외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한다.

태국의 브레이크댄서들

비보잉은 과거 거리의 소년들이 추던 춤이었지만 현재 세계적으로 거대한 장르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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