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엑스포 국제관 관람기

글. 조현신Ⅰ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8월 12일 여수 엑스포 박람회가 막을 내렸다. 5월 12일 개장되어 93일간의 일정에 총 106개국, 부대 예산까지 합한 운영비 12조원, 800여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간 행사였다. 이 박람회는 112회째 국제박람회로 한국에서는 1993년 대전에서 엑스포가 개최된 이후 두 번째다. 근대 디자인의 역사는 박람회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민주 사상과 신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애쓴 디자인 아방가르드들의 노력이 박람회를 통해 세계적으로 홍보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화의 기류를 타고 온갖 쇼와 기획 전시, 글로벌 상품, 광고가 홍수를 이루면서, 엑스포는 이제 더 이상 디자인과 산업 기술을 자랑하는 역할을 담당하지 못한다. 현재 박람회는 인류 보편적인 주제를 선정하여 기획을 하고, 개최 도시 마케팅과 홍보의 실리적인 차원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된다. 이번 2012년 여수 엑스포는 환경에 초점을 맞추어 ‘숨 쉬는 바다, 살아 있는 연안’이라는 하나의 단일 주제 아래 진행했다는 면에서 기획의 참신함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관으로 선정된 국제관의 기획 콘셉트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런 탐색은 한 국가의 기획력과 함께 아이디어와 정보를 다루는 역량의 수위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국가 정체성의 특성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미국관, 일본관 국제관 전시실을 다니던 중, 중동국 오만의 전시관에 들어갔을 때 노인 한 분이 그곳에서 준 배지를 달고는 “나 오만 왕국에 와 있어” 하면서 큰 소리로 통화를 하신다. 즐거운 느낌이 전해졌다. 평생 가보지 못했을 먼 나라를 이렇게나마 느끼게 해주니, 세금으로 진행되는 전시에 이 정도 반응이 있으니, 국가에서 성공했다고 할 만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관은 지구촌 최고의 부국답게 지구촌 화합을 강조하는 목소리를 세계로 보내는 제스처로 구성되었다.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국방장관의 얼굴과 축하 메시지가 나오면서 바다를 배경으로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 노인, 아이들, 여성, 남성 등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물에 대한 감사와 화합,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여러 사람들이 ‘우리의 바다’라는 단어만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세계의 형님을 자칭하는 미국의 제국적 면모가 드러난다. 일본관에서는 재해를 겪고 피어나는 인간과 자연의 화합 의지를 강조했다. 쓰나미로 부모를 잃은 소년과 자전거, 폐허 속의 꽃 한 송이를 등장시켜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라는 메시지를 제시하였다. 핵 폭발 등 국가적 차원의 재해를 겪으면서 많이 침체되었지만, 일본 특유의 서정적인 기제를 이용해 극복 의지를 보여주면서 일본식의 강인함을 홍보하고 있다.

 

한국관 가장 관람객이 많았던 한국관의 거대한 천장 돔 스크린 -지름 30미터, 높이 15미터, 둘레 95미터로 세계 최대 규모- 에서는 한국의 바다를 중심으로 한 역사가 펼쳐진다. 장보고, 이순신, 시 <해에게서 소년에게>, 거대한 수출상선 등으로 한국의 바다를 중심으로 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화면 속에 펼쳐지는 가운데 한국이라는 뉘앙스가 수시로 전달된다. 10분 간의 영상이 마무리될 즈음에 강강수월래와 전통 가무가 시작되면서 관람객들의 손을

잡고 같이 춤을 춘다. 세계 최대라는 하드웨어의 강조, 한국적인 어떤 것, 그것이 여전히 전통적 조선시대의 것으로 메워져야 한다는 디자인계의 아킬레스건을 보여준 듯한 인상이다. 다음의 두 전시관에서는 멸종 위기의 바다동물 듀공(Dugong)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애니메이션과 실물 크기의 듀공 인형을 이용하여 얼마나 바다가 중요한지 관람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 두 전시관은 관람객들의 수준을 초등학생 정도로 설정하여 진행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통에 대한 표상적 집착과 교육, 계몽적 방식으로 진행되는 전시는 공공부문의 디자인에서도 아직 남아있는 근대적 경직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스위스관 국제관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작은 나라답게 아주 작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던 스위스관이었다. 입구부터 쭉 이어진 어두운 복도의 천장에 작은 사이즈의 할로겐 등이 점점이 박혀있고, 관람객이 그 빛 아래서 손을 펴면, 가느다란 물줄기가 떨어지면서 동시에 노란꽃과 아기의 얼굴, 푸른 풀 등의 하늘거리는 영상이 손바닥 안에서 펼쳐진다. 그리고 “나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자원, 물”이라는 슬로건이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관람객 한 명 한 명이 인터랙션하고, 집중해야만 메시지를 전달받는 방식으로, 많게는 한번에 100여 명씩 들어가서 영상물만 보는 거의 모든 국제관과는 뚜렷한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또한 거대 빙하를 운송해서 영하 40도의 방에서 체험하게 한다. 인류 보편의 주제를 스위스라는 단어를 하나도 안 쓰고 제시했으나, 기술, 예술, 체험이 융합되고 교육적 내용이 예술적 방식으로 전달되는 디자인 파워가 느껴졌다. 밖으로 나오니 요즘 많이 핫한 프라이탁(freitag) 가방과 스위스 아미 시계, 빅토리녹스(Victorinox) 등산칼, 유기농 화장품을 팔고 있다. 관람객들은 비싸지 않은 그 물건들을 많이 사간다. 스위스의 디자인이 그대로 관람객의 가방에 실려 간다. 스위스관의 기획이 참신하게 느껴졌던 것은 다른 대부분의 전시관에서는 영상만이 화려한 전시 장치 속에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번 엑스포는 전시 장치의 화려함과 IT 기술만이 뚜렷이 부각된 엑스포로 디자인 역사에 기록될 것 같다.

 

문화 선진국으로 한 가지 더, 전시장에서 드러난 문화의 실천 방식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문화란 어떤 것을 어떻게 향유하느냐의 문제이므로, 일상의 사소한 행위에서 그 수준이 결정된다. 원목과 부드러운 전등을 적절히 사용하고 음악까지 틀어주었던 스페인관의 식당은 북적대면서도 여유로워 문화 선진국다웠다. 그렇기에 미안하게도 날림으로 지어진 시멘트 바닥 식당에서 그릇이 확확 내던져지는 소란스러운 소리 속에서 쫓기듯 밥을 먹어야 했던 한국 음식점과는 많이 비교가 되었다. 입점 회사들의 이윤이 그대로 드러난 야만적인 건물 속에서 급하게 밥을 먹어야 하는 올림픽 5위의 나라, 경제 수준 13위의 대국 국민. 그리고는 빅오 쇼(Big-O)와 수족관, 국제관 곳곳에서 길게 줄지어 늘어서 있던 우리들은 여전히 볼거리와 먹거리에 허기진 문화 후진국 시민이었다. 전시는 전시대로, 일상의 문화는 문화대로 따로 노는 불균형적 기획은 그만하고, 이제는 경제, 스포츠를 넘어 문화를 통해 한국의 자존심을 세웠으면 좋겠다.

 

밖으로 나오니, 한여름 오후의 엑스포장. 전위적인 형상의 기업관 건물과 곳곳의 흰 텐트 사이로 바닷가에서 부는 바람은 흥겨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망토와 스커트 제복을 입은 쭉쭉 벋은 팔등신의 진행 아가씨들이 ‘이리가세요, 저리가세요’ 하면서 관광버스를 타고 몰려든 관람객들을 선도하듯 지휘하고 있다.

주최측은 목표 입장객 수를 무사히 채웠고, 잘 마무리된 행사라고 행정 기획의 성공을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관을 중심으로 본 엑스포의 한국관 전시 기획은 전통적 콘텐츠에 대한 새로운 해석, 계몽적 태도에서 벗어나 좀 더 가볍고 자유로운 탈근대적인 상상력을 요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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