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Artist

꽃, 같은 사람 백은하

작가 백은하는 꽃잎들로 그림을 그린다. 물론, 다른 것들로도 그린다. 불면 날아갈 만큼 가벼운 무게의 꽃잎이지만, 생활의 질료들과 진심이 더해진 그림들이 주는 울림은 그리 가볍지 않다. 요즘 (그녀의 표현대로) 아기라는 더 큰 창작에 집중하며 새로운 단계를 준비하고 있는 작가를 만나, 삶과 작업이 나눠지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 육아 잡지도 아닌데 자꾸 아기 얘기를 하게 된다면서 웃는 모습이, 그림처럼 환했다.

에디터. 박선주, 디자인. 나은민

 

다녀오세요, 구두가 말했습니다 #6

2010년 닥터박 갤러리에서의 개인전 <다녀오세요, 구두가 말했습니다> 연작 중 한 작품

 

Horizon

뉴욕에서 뉴욕을 주제로 열렸던 전시회의 작품 중 하나로 여러 색의 인종들이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을 표현하였다

 

 

글 그림 작가. 대학 시절에는 국문학을 전공했고, 늘 그림을 그려왔다. 말린 꽃잎 위에 그리는 그림으로 ‘꽃그림 작가’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1년 <한겨울의 꽃도둑展>을 시작으로, <겨울풀밭展>, <A flower you are!>, <New Horizon>, <꽃의 근육展> 등의 개인전을 가졌다. 책 『너에게 花를 내다』, 『기차를 놓치고 천사를 만났다』,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크루아상 엄마』, 『’막’ 엄마가 되려는 당신에게』 등과 그림책 『사자야, 전화 왔어!』를 냈다. 삶을 진솔하게 담아낸 글과 그림으로 소통하고 있다.

 

그림은 어떻게 그리게 되었나요

우리가 말을 자연발생적으로 하잖아요. 노래도, 춤도, 먹는 것도 원래부터 자연적인 거죠. 저에게는 그림도 그런 것 같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혼자 계속 그렸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렸지만 학교 다닐 때 미술 시간에 좋은 점수를 받아본 적도 없었고, 그림을 특별히 잘 그린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직장생활 할 때는 창작에 대한 갈증이 있어 틈틈이 그렸어요. 꽃은 원래부터 습관적으로 잘 말렸었고요. 어렸을 때 집에 꽃이 많았거든요.

어느 순간 말린 꽃을 보는데, 나팔꽃이 뒤집혀 있는 형상이 꼭 외출하는 여자 같아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에 선을 더해 봤어요. 꽃마다 그 형태가 다르듯 모두 다른 사람이 나오는 거에요. 그렇게 작업이 쌓여갔어요. 꽃잎 그림을 주작업으로 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동화책 등에 일반적인 드로잉이나 페인팅 작업도 하게 되었어요.

 

다른 일을 하실 때도 그림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거네요. 다른 얘기지만 그런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아요

틈틈이 그려보는 게 좋아요. 이걸로 뭔가를 해야겠다는 목적 없이요. 전시가 되든 상품화가 되든, 그건 쌓이다 보면 흘러가서 나중에 저절로 생기는 결과예요. 어느 시간을 떼어두고, 어느 공간을 마련해두고, 재료도 간단하게 해서요. 거창하면 거기에 눌려서 시작도 잘 못하게 되니까요. 뭔가를 그런 식으로 더하면 더 피곤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그럼 전문적으로 미술 공부를 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네, 없어요.

 

꽃잎뿐 아니라 드로잉, 사진, 글 등을 꼴라주처럼 이용하여 매체나 영역에 구애받지 않고 작업하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재료가 그림의 재료가 되는 것 같아요. 지금 뒤편에 화분이 있잖아요. 저 이파리로 드로잉을 할 수도, 뭉개서 작업을 할 수도 있어요. 한번은 수국이니 금잔화니 여러 꽃들을 뭉텅이로 잡고서 도화지에 바로 힘을 주어 그려, 그 즙으로 작업한 적도 있어요. 어떤 주제를 가지고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방식과 재료로 작업하게 되는데, 그 재료는 무한대인 것 같아요.

아티스트로서 내가 가진 좋은 성향 하나는 호기심이 왕성하고 항상 궁금해하는 기질인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산만하지 않고 자기 영역에만 집중하는, 다른 것들에 호기심과 열정이 부산스럽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기도 해요. 나는 사람을 봐도 궁금하고 물건을 봐도 궁금하고, 무언가를 보면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늘 들어요. 사람대로, 성향대로 사는 것 같아요.

 

많은 아티스트들이 어린아이를 간직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아이들도 호기심이 참 왕성하잖아요

재료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아이를 보면 그래요. 아이에게는 이건 그림 그리는 재료, 저건 뭐 하는 재료라는 구분이 따로 있지 않잖아요. 아티스트로서는 그런 관점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편견과 틀이 없는 것. 모든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훨씬 넓어지고요. 아티스트는 아이 같은 면이 있죠. 철도 없고요.(웃음)

Movement

한 송이의 매발초꽃에서 나온 꽃잎들로 만든 작업

 

작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매너리즘에 주의하고, 반복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내가 정말 뭐를 하고 싶은지를 알고 그것을 그리는 것. 차라리 남이 하던 패턴을 따라 하면 내 나름으로 소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뭔가를 만들 수도 있을 텐데, 제일 나쁜 건 내가 만든 스스로의 패턴을 따라 하는 거예요. 그건 더 이상의 아티스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정도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면 그전의 습성과 생각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항상 제자리인 거죠. 그걸 넘어서서 내가 정말로 그리기를 원하는 것, 지금 내게 절실한 것, 그걸 자꾸그리려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계를 만들지 말고 영역을 나가고, 나가고, 나가는 것이요.

 

꽃그림 작가로서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 이름이 제한적으로 느껴질 때는 없나요

요즘, 아니 한 삼사 년 전부터 그 부분을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내 스스로의 틀을 벗어날 수 있을지, 그게 사실은 가장 나다운 것을 찾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꽃그림 작가라고 딱 고정되어 있으니까 옴짝달싹 못하는 면이 있어요. 일단 남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내 스스로 그 안에 묶여 있는 거예요.

이번에 이사를 하느라 짐 정리를 하면서 예전 그림들을 발견했어요. 꽃그림 작가로 이름이 알려지기 전에 그렸던 그림들도 있었어요. 내가 유난히 토끼랑 코끼리를 좋아하는데, 그 드로잉이 많더라고요. 그림이 어딘지 다 허술하게 웃겨요. 방콕에서 산 색색의 수세미들을 가지고 만든 아트북 등 이상한 것들이 막 나오더라고요. 그것들을 보면서, 나한테 이런 웃기고 엉뚱한 면이 있었는데 그런 건 다 덮어버리고 예쁘장하고 고요한 세계에만 천착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다고 꽃잎 그림의 성격이 모두 그렇다거나 그 자체를 내게서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꽃잎 그림은 나의 본질적인 아이덴티티겠고, 앞으로도 무궁하게 작업할 수 있을 거예요. 곱게만 아니라 익살스럽고 강렬하게도 표현할 수 있겠죠. 내가 나를 좀 더 발견하고, 좀 더 자유로워지면 꽃잎 그림이든 다른 그림이든 스스로 생명력이 있어지고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재미난 구상들도 많이 하고 있고요.

 

그림을 그린 세월은 얼마나 되었나요

12년쯤 된 것 같아요.

 

그럼 돌이켜보면 어떻게 변화했는지가 보일 것 같아요

실은 십 년을 했으면, 좀 더 굵직한 한 가지로 나올 법도 해요. 여기저기 있는 실선들을 어느 순간 하나로 묶으면 큰 다발이 만들어지면서, 작업이 큰 물결처럼 흘러 가야하는데 아직 그 작업을 못했어요. 어떨 때는 아직도 나는 낱낱의 실들을 탐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언젠가는 큰 덩어리로 묶어지겠죠. 아직은 그 단계가 아닌가 봐요.

 

꽃잎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작가님에게 꽃이 갖는 매력은 무엇인가요

우선은,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그냥 좋아요. 원래 꽃이라는 게 번식이라는 기능과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꽃을 보면 이게 어떻게 우연인지,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빚어질 수 있는지, 조물주가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인류에 대한 선물처럼요. 온갖 꽃들이 각기 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세상의 모든 색은 다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꽃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동서고금 모두들 아름답다고 느끼고, 선물처럼 생각해요. 애기를 보면 알아요. 애기도 꽃이 예쁘다고 느끼죠. 학습된 것만이 아니라 원초적인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작은 꽃은 작은 꽃대로, 그 안에 모든 것이 온전하게 들어 있는 게 경이롭고 큰 것은 큰 것대로, 예쁘기만한 게 아니라 남미의 꽃들처럼 굉장히 무섭고 흥미롭기도 하죠.

그리고 작업자로서 꽃의 아름다운 점을 덧붙인다면, 말렸을 때 그 꽃들에게서 사람이 느껴진다는 점이에요. 말리면 그 모양이 또 달라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뉘앙스와 포즈들이 나와서, 어떤 때는 밭을 갈고 있는 농부 같고 어떤 때는 굉장히 시니컬한 남자의 앉아 있는 모습이 보여요.

 

 

강강술래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에 출품되었던 <강강술래> 연작 중 한 작품

 

 

 

* 기사의 전문은 <지콜론> 8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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