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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alk

 

한국 디자인의 ‘다양성’을 위한

: 디자인 교육에 관한 난상토론 爛商討論

 

진행 : 성재혁

패널 : 정진열 / 이지원 / 강구룡 / 김의래

에디터 : 이찬희

글, 사진 : 김상미

디자인 : 류보미

일시 : 2012년 3월 9일 / PM. 19:00 ~ 22:30

장소 : 서울 마포구 서교동 북에디토리얼 카페 비플러스

 

 

<Design, Now>

 

3월 초순의 금요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북에디토리얼 카페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이들 중 누구는 디자이너이고, 누구는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 그리고 다른 이들은 이번 토론을 위한 패널들이다.

 

성재혁, 정진열, 이지원, 강구룡, 김의래. 디자인 교육에서 시작하여 디자인 사회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교육자와 그래픽디자이너로 구성된 다섯 명의 디자이너가 한 자리에 모였다. ‘디자인 교육은 사회(미디어)의 변화에 앞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 없는가’, ‘디자인 교육은 사회에 나가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매체 중심의 job(잡)기술, 즉 매뉴얼을 가르치는 것이 과연 맞는가’, ‘제도권에서 교육받는 것과 스스로 디자인을 공부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디자인 사회에는 왜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은 없고 적만 있는가? 의견이 다른 사람들 모두가 적일 수는 없다.’ 등 언중유골의 정신이 깃든 이들의 대화는 한국 (디자인)사회 안에서는 여전히 미래형이다. 사회가 잘못됐음은 교육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어서, 교육이라는 거대한 틀부터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은, 그래서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듣든 말든, 귀 기울이든 말든 누군가는 계속해서 말할 것이다.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자유로이 이야기하고 또 그 이야기를 자유로이 비평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디, 자, 인”이라고 말이다.

 

성재혁

여기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국민대에서 디자인 교육을 받거나 가르치거나 한 사람들 이다. 디자인 교육은 현재 학교에서 하는 정식적 교육과정에서는 다른 교육적 철학을 경험 해 보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 내가 거쳐왔던 교육과정 외에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피상 적으로 결과물, 활동 상황들, 저술 활동 등을 보면서 ‘이런 방향이겠구나’ 정도를 유추한다. 결국 이 자리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대화를 나누게 될 것 같다.

나부터 먼저 시작하겠다. 난 1990년대 대학교에 입학했다. 1, 2학년 때만 하더라도 컴퓨터 라는 것은 없었다. 도안이란 개념에서 작도법을 배우고, 타이포그래피라 하면 기초적인 부 분에 지나지 않았다. 사진 이미지나 글자들을 자유자재로 합성할만한 기술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 교육 자체도 분절적이었다. 당시 좋아하던 회화 작품을 보면, 풍부한 이미지가 펼쳐 지는 데 반해 내가 배우는 디자인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군대를 다녀온 후 컴퓨터가 사용 될 무렵, 『타이포그래피 나우(Typography Now)』라는 책을 우연히 접하였다. 그 안에 내가 꿈꾸는 이상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그에 반해 ‘난 뭐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유학을 결심했었다.

 

정진열 나는 원래 철학 전공자이다. 당시 나는 문화활동이나, 영화, 음악비평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게 재미있게 살다가 철학을 계속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 다다르 니 철학을 위한 인고의 세월은 너무 길었고, 다른 게 없을까 고민하게 됐다. 그러다가 인터넷 방송과 음반을 기획하는 회사에서 기획자로 있게 되었는데, 그 회사에서 디자이너가 작업해 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하고 말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 주변 사람들의 ‘디자인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말에 국민대에 편입했다. 그게 2000년대 초반이다. 이제껏 개념적인 이야기를 해오다가, 그 개념이 교차되는 경험을 했다. 이후에 더디(The-D)라는 스튜디오의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었고 국민대 제로원 디자인센터로 이동했는데, 그때 루에디 바우어(Ruedi Baur)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특히 잡지 <레이건(RayGun)>을 좋아했다. 데이비드 카슨(David Carson)담당 시절 이후에 로버트 헤일(Robert Hales)때의 <레이건> 잡지가 있었는데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음악과 이미 지의 관계를 좋아했다. 흔히 말하는 공공디자인의 영역을 발전시키는 세계적 디자이너들의 활동을 보고 나도 그 방향을 원해서 유학을 결심했다.

 

이지원 나는 성재혁 교수보다 6년이 아래이다. 이 6년의 시간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성재혁 교수가 아날로그 테크놀로지의 끝물을 탔고, 그 이후 학교에 디지털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 변환기의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이다. 당시는 디지털 기술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도 전에 이전의 기술적 방식을 버리고 컴퓨터로 완전히 교체된 상황이었다. 혼란의 도가니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었던 즈음 군대를 다녀왔더니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외 부 강사에게 맡겨 진행하고 있었다. 지금 사디(SADI)에서 교수로 계신 김현미 교수가 당시 우리 를 가르쳤다. 내용이 너무 좋고 재미도 있었다. 학교의 정식 교육은 그때까지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당시 국민대학교에서는 영상과 광고 등이 강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래픽디자인 이론에 대해 소홀했던 시기라고 나름대로 분석한다. 4학년 때 선배를 통해 편집디자인 회사인 홍디자인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실 난 그렇게 잘하진 못했다. 하지만 전체 학년에서 익스프레스를 다루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다른 학교친구들은 관심이 아예 없었다. 다 광고해야 되고, 영상해야 되는지 알았다. 물론 지금은 완전히 바뀌어 기초를 중요시하고 그래 서 이론이 정착되었다. 어쨌든 난 그곳(홍디자인)에서 완전 바보 수준이었다. 편집디자인을 꽤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홍디자인에서 SK텔레콤의 스트리트 매거진인 <TTL>이라 는 매거진을 만드는 팀의 일원이 되었었다. 거기서 실무의 기초를 익히고 유학을 떠났다.

 

강구룡

난 01학번이다. 나도 원래 광고를 하려고 했었다. 군대를 다녀와 보니 학교에서 배운 건 없는 것 같았다. 약간의 딜레마가 생겨 3학년에 방황을 좀 했다. 그리고 당시는 인터넷이 막 활성화될 시기여서 엄청난 리서치를 했다. 아마 학교에서 외국 사이트를 가장 많이 즐겨 찾기를 한 사람이었을 거다. 외국의 디자인을 보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성향 이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교수님들에게서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진 않았다. 내가 리서치 한 것들을 해독하는 시간이 더 좋았다. 나는 그때 학교 선생님들을 불신하고 낮게 보았다. 인터넷을 보면 더 신선하고 좋은 것이 많은 것 같았다. 그때 성재혁 교수님이 학교에 왔고 그 수업을 들었는데, 너무 재밌었다. 성 교수님으로부터 타이포그래피 중심의 교육을 들으면서 ‘이렇게도 표현될 수 있겠구나’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다 성 교수님의 수업을 들은 이후로는 ‘내가 겉멋이 많이 들었구나’라는 것을 느꼈고 차근차근 기초부터 밟으려는 생 각이 들었다. 그때 김의래와 같이 <A4>전시도 기획하고 진행하게 됐다.

 

김의래 나는 학교를 두 번 다녔는데 둘 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강구룡과는 동갑이지만 02학번으로 들어갔다. 당시 경험한 타이포그래피는 신선한 분야였다. 한창 안그라픽스 디자인이 주류가 되어 안그라픽스 스타일이 유행하던 시기이다. 당시 책 한두 권은 뚝딱 만들 정도는 되었던 나는 내가 타이포그래피를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다. (웃음)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다가 공부를 더 하려는 생각에서 국민대에 응시했고(유일하게 국민대만 영어 시험을 보지 않았다.) 실기 시험을 위해 유니버스체를 A4 용지에 뽑아서 외웠다. 시험에 뭐가 나오든 전부 유니버스체로 표현하겠다고 생각했다. 합격이 되어 학교에 들어와서도 내가 좀 잘한다는 우월의식이 있었다. 난 성 교수님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작업한 것을 수업 시간에 내놓았는데, 내 작업을 보고 교수님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지나가는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그런 교수님의 반응이 혼란스러웠다. 안그라픽스 스타일이라 는 것은 나에게는 타이포그래피의 흐름과 같은 중심 축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내가 알고 있던 타이포그래피가 제일 좋은 게 아닌가’하는 혼란을 느끼게 된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내가 하는 작업이 좋은지 아닌지도 모르겠더라. 그러나 그런 혼란들이 나에겐 굉장히 유익한 경험이 되었다. 디자이너로서, 타이포그래퍼로서 가져야 하는 내 절대적 신념을 지우개로 지웠던 경험이다.

 

성재혁 (이지원 선생이 복학한 시점에만 하더라도) 국민대는 상대적으로 학교 시스템이 늦게 만들어진 편이어서 좀 더 전략적으로 다른 학교에서 하지 않는 부분을 파고든 것이 사진과 영상, CF제작, 애니메이션이었다. 광고디자인으로 학생을 본격적으로 진출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편집디자인과 관련이 있는 타이포그래픽, 그래픽디자인 전반에 대한 교육은 등한시하던 시기였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은 마음에 동아리 활동이 일어났다. 시대가 바뀌어 새로운 교육이라 하더라도 미디어가 변화된 상황에서의 새로운 것이 추가된 상황이지, 근본적인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 한다.

 

정진열 더디에서 편집디자인을 하는데 옛날 은 위지윅이 되지 않았다. 즉 보는 데로 출력되는 것이 아니라 화면에선 글자가 다 깨져서 보였다. 전통적인 도제 시스템으로 학습되지 않으면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해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 세대의 디자인은 굉장히 급변했다. 예전에는 독립 스튜디오가 아닌 기존의 스튜디오에서 몇 년을 경험하지 않으면 사회에 나가서 일하지 못했다. 클라이언트도 없을뿐더러, 누적된 경험을 가질 수 없었다. 덕분에 난 경험이 없이도 보이는 것 자체에서 판단하여 편집할 수 있었다. 미디어의 전환이 디자인 교육의 전환점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성재혁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나서 국민대에 교육하러 왔을 때의 느낌은 ‘변한 것이 없다’였다. 근본적인 디자인 접근 방식이 그대로였다. 여전히 같은 커리큘럼의 방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1990년대 학번이고, 2006년도에 학교로 돌어왔으니 1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 디자인 교육의 획일화된 부분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미국 유학 때 학부에 다시 편입했었다. 처음 갔던 학교는 CIA(Cleveland Institute of Art)라고 그곳도 한국의 교육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원으로 간 칼아츠(CalArts)의 첫날, 첫 수업에서 난 바보가 되었다. 타이포그래피 수업이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알던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또 하나는 커리큘럼 안에 역사 개념이 철저하게 녹여져 있다는 점이다. 그 이전에 받았던 교육은 사회에 나가서 쓸 수 있는 훈련을 위한 교육이었다. 디자인은 멋진 것이란 환상을 가지고 학교에 갔는데 졸업을 할 즈음에는 ‘디자인은 그냥 뭐 그런 거야’ 정도가 되었다. 리셋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멋있는 것을 봐도 감흥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정진열 기존의 디자인 교육은 장단점이 있다. 쉽게 말하면 매체 중심, 잡 중심의 교육이다. 시장이 존재하고, 시장에서 일하기 위한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 디자인 교육의 핵심적 목적이었다. 1922년에 윌리엄 드위긴즈(William A. Dwiggins)가 자기가 하는 일을 ‘그래픽디자인’이라고 말한 이후에 그래픽디자인이라는 용역의 일이 매체 중심으로 책을 만들어나, 영화를 찍거나, 광고CF를 만들거나 하는 등의 매체 제작을 소화해 낼 수 있는 시스템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이 4년제 디자인 대학의 시스템에 편입되어와서 그대로 이어졌다.

 

성재혁 한국,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학문적으로 정착된 교육을 하는 곳은 열 군 데가 안 될 것이다. 그건 다른 방향의 교육이라는 것을 뜻한다.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쁘다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학생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는 점이다. 고등학교에서 갓 학부에 입학한 학생 입장에서 그 학교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떤 교육을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어쩔 수 없이 성적에 의해 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은 엄청난 불행일 수 있다. 알 기회가 없다는 것이 비극이다. 학교에 들어와서 본인이 직접 깨닫기도 쉽지 않고, 깨달았다고 해도 깨닫고 난 다음에 또 다른 기회라는 것이 쉽게 올 리도 없다. 한국의 디자인은 어떤 사상이 적용되어 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산업과 관련된 경우였다. 어느 날 갑자기 한국에서 아시안게임을 하고 올림픽을 하게 되니, 그 필요에 인해 인원을 생산해내는 교육이 생긴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약 95% 이상의 학교가 직업교육 형태를 띄고 있다.

 

강구룡 2004, 5년 정도에 디자인 서적 중 특히 ‘~읽기’ 같은 책이 많았다. 그 중 『디자인문화 읽기』 같은 경우는 디자인 안에 디자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연관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 에드리언 포티(Adrian Forty)의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를 읽고는 충격을 받았다. 디자인을 사회학적인 관점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인문학이 아니라 어떤 정반합을 통하거나 예시를 든다거나 실험을 하는 것을 디자인 역사에도 대입하여 분석하는 학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좀 건방진 생각이지만, 예쁜 건 죄악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속으로 디자이너의 레벨을 나누었다. 수업보다 혼자 생각하고, 책 읽는데 열중하였다. 그러다 보니 일러스트레이터나 언어보다 메모장에 글 쓰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글이라는 건 유일한 나의 콘텐츠였다. 그런 활동을 해야겠다 생각하던 차에 들어간 첫 직장 인 스튜디오 바프의 이나미 실장님이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우리 스스로 책을 내자는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지금도 그런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데, 디자이너 학생들이 글 쓰는 일을 좀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 포스터 작업을 몇 장 더 하거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졸업하는 게 아니라, 추가적으로 자신의 글까지 쓴다면 졸업을 하고 나서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의래 나는 강구룡과 같은 인텔리한 사람은 전혀 아니었다. (웃음) 시각디자인과 합격을 받고 나서 디자인회사에서 일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일단 돈이 필요하기도 했고. 내가 간 학과가 야간이라 가능했다. 아는 분 소개로 간 회사가 충무로 인쇄소 안쪽에 있는 협소한 디자인회사였다. 그때 작업을 하면서 디자인은 그저 예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시기를 지나 디자인을 다시 배우면서 앞에서의 생각은 깨져버렸다. 이전의 나는 공장처럼 찍어내는 교육을 받았었다.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받을 때 강사로 오셨던 분은 처음에 A4용지에 매뉴얼 같이 프린트해 오셔서는 윤고딕, 윤명조만 쓸 것, 윤고딕은 장평 95%에 자간 -120 같은 식으로 매뉴얼을 다 정해줬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보면서 예쁘냐 안 예쁘냐를 평가하던 시기였다.

 

정진열 김의래씨가 안그래픽스 스타일을 모방했다고 했는데, 그때 가장 많이 쓰던 SM신명조에 자간은 얼마로 주는 등의 규칙이 있었다. 그래야 ‘좋아 보인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이 ‘좋아 보인다’라는 것이 디자인에서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사실 지금도 중요하다. 중요하지 않을 리가 없다. 결국 디자인은 어떤 형태를 다루는 학문일뿐더러, 실무 상황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왜 그것이 그렇게 나와야 하는가, 이게 어떤 콘텐츠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런스타일로 나와야 하고, 다른 내용을 담기 위해서는 다른 스타일로 나와야 한다’라는 고민들의 흔적이 보기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이지원

우리가 난상토론을 위해 모인 자리이니, 대척되는 지점에 대해서도 말을 좀 하고 싶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나의 경험으로 비춰볼 때, 외부에서 보는 것과 내부에서 실제로 느끼는 것은 많이 차이가 있었다. 여기에서 내·외부는 실제 클라이언트 잡을 하는 디자인스튜디오들이다. 홍디자인에서는 실제로 형태가 콘텐츠, 스타일, 문화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에 대해 많이 고민하였고, 그 고민들을 디자인에 발현하려 많이 노력했다. 그러나 밖에서 보면 그 결과물은 그렇지 않다고 보일 수 있다는 거다. 홍디자인에서 클라이언트 잡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해서 내보내는 것은 아니다. 밖에선 ‘왜 이거밖에 못 했나’라는 얘기가 많이 들렸다. 실례로 교과서 작업을 하는데,교직에 관련된 분들에게 승인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교과서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이 콘텐츠를 어떤 디자인으로 표현해야 학생들에게 잘 받아들여질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서 가져다 주면 교직에서는 ‘그냥 워드로 쳐서 뽑으면 이렇게 나오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나중에는 삽화를 넣어 화려하게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후 현실적인 이유로 광고 회사에 들어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나는 광고를 사회의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광고 회사 사람들은 보다 재밌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자기에게 주어진 광고라는 수단으로 노력하는 중이었다. 자동차 광고를 만들어야 할 때, 차를 하나 살 때마다, 루이지에나 살림 늪지대에 나무를 하나 심는다는 프로젝트를 했다. 물론 이건 차선책이다. 자동차가 없어지는 것이 최선책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미션이다. 지금을 일단 이렇게 해보자는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매체와 무관하게 이런 노력들을 늘 하고 있는 것이다.

 

성재혁 지금부터는 제도권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 독학으로 공부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한다. 우리가 우리의 제도권에 관한 이야기를 해봐야 그 경험을 모든 사람이 할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다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디자인 교육은 협소하거나, 획일적인 것이 아니다. 다양하고 많은 경험이 공존해야만 학생들이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내가 제도권에서 받은 교육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보면 솔직히 제도권 교육이 하는 역할은 일종의 촉진제이다. 조금 더 직접적인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과 같은, 예를 들면 ‘이런 쪽으로 뭔가를 해보면 빨리 할 수도 있다.’ 정도이다. 하지만 그 방향만 가지고는 개인이 스스로를 모티베이션 할 수 있는 내용은 없다. 그러니까 아무리 좋은 것을 가져다 주어도 자기가 좋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다. 폴 엘리먼(Paul Elliman)은 독학을 한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그는 처음에는 음악이 좋았다고 했다. 어느 날 새로 음악 잡지가 창간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디자이너로 일할 줄 안다고 거짓말을 하여 잡지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그는 도 다룰 줄몰랐고 당연히 제대로 만들어졌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2호 제작 때 쫓겨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 뒤 음악과 잡지가 가지는 매력을 스스로 느껴버린 그는 포기하지 않고 혼자서 음악관련된 잡지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는 사실 디자인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었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 자체를 그저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즉,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모티베이션을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지원 셀프텃(self-taught) 디자이너라고 스스로 배운, 독학으로 디자인을 익힌 디자이너가 멋있게 보이긴 한다. 솔직히 그래픽디자이너라는 직업 자체가 학교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서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셀프텃 디자이너를 추앙하는 분위기의 첫 번째 위험은 반지성주의에 있다. 지식이 필요 없다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그래픽디자인, 시각예술이라는 분야에는 그 동안의 역사가 있고, 그 역사 동안에 이루어진 성공과 실패 그리고 좌절과 합일되어 도출된 결론, 공통으로 나누는 용어, 지식 등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성을 멀리하는 것을 마치 멋있는 것처럼 느끼고 이런 것이 만연한 반지성주의가 창궐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런 사람들을 동경함으로 인해 그래픽디자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고리타분하고, 차갑고 딱딱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두 번째로 위험한 것은 이런 반지성주의가 확산하게 되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분야가 그래픽디자인에서는 대학원이다. 석사는 이 분야에 미래를 결정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반지성주의가 확산하게 되면 좋은 논문이 나올 수 없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렇게까지는 가지 않는다. 독학 디자이너들은 나름대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그 중심에 디자인학계가 확실히 중심을 잡는다면 문제 될 것은 없고 오히려 좋다고 본다. 하지만 전세가 역전되면 매우 곤란하다.

 

강구룡 일단 기본 전제는 공부는 혼자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디자인도 어느 부분 공부이기 때문에 동기가 굉장히 중요하다. 한국에서 디자인으로 먹고 살고 있지만 이 좁은 바닥에서는 혼자서 뭘 한다는 것이 참 힘들다. 영향을 다 받게 되어 있다. 아까 말한 샘플링 을 한다거나, 리서치 하는 것도 나 혼자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계속 알리고 싶은 것이다. 결국에는 이런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과 교류를 한다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하나의 트렌드가 생기게 될 수도 있고, 이론이 될 수도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디자인만의 이론이 없다는 것이다. 사회과학 언어, 인문학 언어에 디자이너들이 굉장히 콤플렉스가 있다. 인문학을 좀 알아서 몇 마디를 해야 내 작품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언어를 자꾸 수입해서 쓰는 것이다. 반지성주의도 좀 웃긴 것이 여기에 지성이 있는 것이다. 외국에서 수입된 언어를 쓰면서 과연 한국에 그래픽디자인이라는 용어가 있는가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성주의 그런 것 할 것 없이 디자인의 언어를 이론으로 만드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더 깊은 것은 혼자 공부하는 것이 반드시 중요하고, 하지만 이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직접 만드는 재미, 조형을 만드는 재미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어떻게 해서든 지속했으면 한다. 지금까지의 짧은 경험에서느낀 것이다.

 

김의래

나는 디자인교육은 기본적으로 암묵적인 것을 형식적인 것으로 일궈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왜 예쁜지, 내가 한 게 왜 좋은지, 타이포그래피가 왜 이렇게 배열돼야 하는지’에 대해서 한 번쯤 그것을 형식적으로 끄집어내서 이유를 찾아보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교육들, 성재혁 교수를 만나기 전까지의 교육들은 암묵적인 것은 있는데 형식적인 것은 없었다. 선생님이 하라니까 그렇게 한 것이고, 그게 예쁘다니까 예쁜 것이었다. 그것이 반복적으로 학습되다 보니까 나도 그게 예뻐 보이는 것이다. 난 그런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디자인교육이 혼자 하는 것도 맞지만, 선생님들이 해 줘야 하는 역할도 반드시 있다고 본다. 그것은 학생들에게 자기 작업 아니면 남의 작업들을 계속해서 읽어낼 수 있는 과정을 거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왜 예쁜지를 텍스트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면 디자인을 하는 역량이나 작업하는 성향들이 계속 진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고 더 새로운 것을 탐구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고 생각한다.

 

이지원 학부 때 타이포그래피라든지, 그래픽디자인의 기초적인 부분에 대한 배움의 갈증이 있었다. 이것을 학교에서 다뤄주지 않으면 스스로 배울 수밖에 없는데, 혼자 하기에는 모르는 것이 많고 외롭고 힘드니까 관심 있을 것 같은 친구들을 모아 소모임을 만들었다. 학교에서 내가 충족되지 못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출구였다. 물론 지금 돌아보면 제대로 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 원했던 것들이 나중에 나에게 주어졌을 때, 그때 그렇게 찾아 헤매던 어떤 것의 해답으로 주어진 것이다. 학교에서 안 가르쳐 주니까 끝! ‘이건 중요하지 않아’라고 넘어가 버리면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정진열 내가 학생들에게 ‘지금 디자인이 이렇다’라고 말하고, 학생들이 질문한 것에 대답해 주는 정도의 교육이면 편할 것 같다. 그러나 지금 현재 미술교육 정황상 중·고등학교를 거쳐 전공을 선택하면서 이 전공이 어떤 학문인가에 대해서 생각했거나 전공에 대한 지식을 갖춘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대학원 지원자들을 보면, 그 학교에서 어떤 수업을 하고 있고, 어떤 목표를 가졌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이 10%도 안 되었다. 무슨 얘기냐 하면, 학교 아카데미즘의 방향이나 학교 진학의 목적은 딱 하나, ‘증’ 때문이다. 이제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줘야 하는 처지이다. ‘왜 이게 중요한지, 네 삶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이것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것이 대학교 교수의 몫이 되어버렸다.

 

성재혁 이것은 세대의 차이에 있기도 하다.

 

김의래 교수의 몫이라는 말을 듣고 생각을 해보았다. 타이포그래피 교육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서, 다른 분들이 하는 타이포그래피 교육방법론을 탐구했다. 그랬더니 특별히 참고할만한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는 분은 거의 없었다. 타이포그래피가 뭔지도 모르고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예로 꼭 나오는 커리큘럼이 글꼴을 뭉쳐서 사람 얼굴을 만드는 수업이다. 나는 그만큼 쓸데없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 면을 보면 교수들이 가져야 할 자격요건 자체도 많은 부분이 상실된 것 같다.

 

정진열 그렇다면 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에서의 쇼크를 받고, 다시 스튜디오를 시작한 입장에서 학교에서 배운 디자인적 지식이 스튜디오 운영에서 도움이 되었나?

 

김의래 사실 실질적으로 그렇게 도움이 되는 게 많지는 않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자신들이 이미 생각해 놓은 이미지를 가지고 일을 주기 때문에 내가 해석해서 새롭게 해석해서 보여줄 여지가 많지 않다. 그 사람들은 디자이너가 자기가 원한 이미지를 그려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저 사람에게 전적으로 맡겨야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점은 디자이너 스스로도 조금씩 깨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회구조상에서도 조금씩 변화해야 하겠지만, 일단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렇게 타이포그래피 타입으로 얼굴 만드는 것이 더 효과가 있고 멋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변화는 교육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개인적이고, 개인의 변화에서부터 사회 전반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교육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교육은 교육을 착취하는 구조로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 교육자가 되기 위해 유학을 떠나고, 유학을 다녀와서 교육자가 되면, 또 교육자가 사람에게 뭔가를 만들어서 보여주어야 한다.

 

정진열

아카데미즘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하고 넘어갔으면 한다. 그 중에서 스튜어트 베일리(Stuart Bailey)라는 <닷닷닷(Dot dot dot)>의 편집장이 그래픽디자인을 ‘kind of ghost’ 즉, ‘유령과도 같은 존재’라고 표현한 것을 언급하겠다. 디자인은 다른 매체 혹은 산업과의 결부 없이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아카데미즘이 무너진 지 오래이고 모든 학교들이 미술 쪽은 퇴출 위기를 겪곤 한다. 그러면 그래픽디자인에서 아카데미즘이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이지원 그래픽디자인이란 것은, 성재혁 교수의 정의를 빌리자면 ‘무언가를 계획’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벌써 ‘무언가’를 이란 말이 붙는다. 브루스 마우(Bruce Mau)는 셀프텃 디자이너로 자기 콘텐츠를 본인이 다 만들고 디자인한다. 그는 작가이자, 사회를 분석하는 사회학자이며, 디자이너의 역할 모두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인이라는 행위 자체가 그 콘텐츠와 연관해서개별 콘텐츠를 생산해내며 할 수 있는 활동은 아니다.

미국에는 해운대 백사장 모래알만큼 많은 학교가 있다. 그 중에서 정말 괜찮은 커리큘럼의 학교는 5개 정도이다. 나머지 학교는 매우 보수적인 교육을 한다. 미국식 모더니즘 교육에 기초한 이미 맛이 간 교육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그것이 변화의 도전을 받지 않고 계속 유지되는 이유는 로컬 비즈니스, 즉 지역 사회의 산업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디자인과를 졸업하면 서울에 있는 대기업이나 디자인사무실에 취직해야 한다. 그곳의 로컬비즈니스들이 디자인 학생들을 다 흡수한다. 그리고 그 디자이너들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잘 놓는 배열’을 원한다. 그러니까 교육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인력을 배출하면서 자족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런데 내가 조교수로 간 학교(버지니아 주립 올드 도미니언 대학교)에 케네스 피츠제럴드라는 디자인 비평가는 이런 상황을 바꾸고 싶어했다. 한번 제대로 갈아 엎어보자 해서 나를 채용했다고 했다. 어차피 이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서, 타이포그래피를 기본으로 하고 이론을 강화했으며, 나머지 커리큘럼은 문화를 탐구하는 것으로 바꾸는 계획을 세웠다. 속내는 이론과 타이포그래피를 기본으로 갖추고 있으면 그 다음의 시각 문제는 사회를 어떻게 보는가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카데미즘이란 것을 이야기하자면, 변혁을 이루는 가운데서 결국은 학생들이 굉장히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고, 이 분야는 무엇인가 하는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아카데미즘이 그 중심을 잡아주지 않으면, 잘못될 경우 교육 자체가 진로를 잃고 그래픽디자인이라는 영역 자체에 혼돈이 일어나서 ‘이건 예술이야, 디자인이야, 사회학이야, 인문학이야’라는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렇게 혼란이 오고 영역 파괴가 이루어지는 것이 잘된 것인가, 잘못된 것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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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전문은 <지콜론> 4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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