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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의 확성기 ⑯ 변화에 관하여 / 이우녕 (해외배송 가능상품)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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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의 확성기 ⑯ 변화에 관하여 / 이우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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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의 확성기 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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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관하여

 

몇 년간 운영하던 조그만 디자인 스튜디오를 정리하고, 칠흑같은 방황 끝에, 런던행을 결심하였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나는, 아주 낯선, 전혀 새로운 것에 대해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변화를 결심한다는 것은 늘 두렵고 그 변화를 실현시키기 위해선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익숙한 환경을 떠나 전혀 다른 세상에서 다른 언어로, 낯선 문화, 낯선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것은 어쩌면 다른 정체성을 하나 더 지니게 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 다른 ‘나’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죽음과 재탄생의 고통를 겪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는 정말 예상치 못한 많은 경험과 성찰을 가져다 준다. 수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미 익숙해진 것들을 뒤바꾼다는 것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삶은 그런 것 같다. 계획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그렇다고 계획이 늘 어긋나는 것만도 아니다. 다만 말끔한 곡선을 타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기에, 우리는 늘 이상을 꿈꾼다.

꿈을 꾼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꿈이 있고 망각하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하지만 간간이 마주치는 기쁨과 희열 뒷면의 현실은 여전히 냉혹하고 고통스럽다. ‘해야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보다 많은 것은 누구에게나 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꿈을 꾸면서도 늘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현실 속에서 꿈을 좇는 것보다 현실을 꿈꾸는 것이 행복을 향한 지름길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것이 더욱 나를 이곳으로 오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실무에서 일을 하다가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생각했던 만큼 신나는 일도, 짜릿한 일탈도, 달콤한 현실 도피도 아니었다. 그저 지독한 외로움과 또 다른 모습의 방황,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이다.

나에게 이번 여정의 목표는 ‘중간만 하자’이다. 지난 수 년간 돈을 벌기 위해서, 혹은 성공이라는 멋들어진 껍데기를 걸치기 위해 아등바등 육체와 영혼을 깎아온 나에게, 어쩌면 이 기회는 삶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는 중요한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살아온 방식을 바꾼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결론으로 첫 학기는 끝이 났다.

날씨가 우중충하고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런던 거리는 늘 화려한 색상들로 가득 차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알록달록한 옷들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과시한다. 초록색 레깅스와 보라색 스커트를 입은 여인들, 빨강 바지와 하얀 스카프로 한껏 멋을 낸 남자들. 그리고 어느덧 나도 그들과 함께 어우러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것이 적응이다. 변화와 적응을 통해 새로운 것은 다시 옛 것이 되고, 옛 것은 다시 새로운 세대들에 의해 재현된다. 우리의 DNA 속에는 꿈과 망각, 변화와 적응에 대한 태고의 능력들이 내장되어 있다. 아마도 먼 옛날부터 지속되어 온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본능일 것이다.

아무리 네트워크가 발전하고 그리하여 지구 반대편과도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 펼쳐졌다고 해도 여전히 사람은 살 붙이고 기대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보다. 매일 아침 서로의 안부를 습관처럼 묻고, 두 볼에 키스를 하며 서로를 포옹으로 다독여 주는 이들의 문화는, 어쩌면 오랜 시간 굶주려 왔던 ‘관계’에 대한 나의 허기진 배고픔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것 같다. 그렇게 이들은 이들 나름의 통로를 열어 놓은 채 살아오고 있다. 시야를 조금만 가까이에 두고 바라 보면 좀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상점에서 습관처럼 붙이는 ‘Cheers’라는 단어도, 조금만 스쳐 지나가도 조심스레 외치는 ‘Sorry’라는 단어도, 처음에는 낯설고 지나치게 느껴졌지만,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면, 서로에 대한 작은 관심, 그리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작은 약속의 단서들일 것이다.

정으로 뭉쳐있다는 대한민국에서도 느낄 수 없는 ‘잃어버린 정서’를 나는 이곳에서 곧 잘 느낀다. 이것은 서구 예찬도, 대한민국에 대한 경시도 아니다. 그저 지난 반세기동안 아픔으로 얼룩진 역사,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정신 없이 앞만 보며 달렸던 우리의 부모 세대, 늘 최고가 되기 위해 ‘현재’를 포기하고 ‘미래’를 살아야만 하는 우리 세대… 우리가 이러한 현실에 처했기에 어쩌면 잊고 지냈던 많은 것들을 이들은 다행히 잘 간직해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OECD 자살률 28위(2009년 기준)가 말해주는 것은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수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200년이 넘은 Hatchards 서점과 150년이 넘는 학교들, 빅토리안 양식의 건물과 포스트모더니즘 양식의 높은 고층빌딩이 한 도시 안에서 이루어내는 절묘한 조화는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 도시의 살아있는 숨결이다. 이제 이것들은 더 이상 동양 유학생들이 느끼는 열등의식의 대상이 아니다. 단지 ‘다름’, ‘아름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우리에게 없는 것들을 스스럼 없이 즐길 수 있는 ‘흥미로움’의 대상이다. 어쩌면 문화에 대한, 특히 디자인에 대한 열등의식은 그들이 준 것이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가 만들어 쓴 멍에일지도… 그렇게 나도 무거운 멍에를 쓰고 이 곳에 처음 발을 내디뎠다.

내가 속해있는 코스에는 20여 개국에서 온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학생들이 모여있다. 50명이 넘는 인원 중 영국인은 오직 5명뿐이다. 가끔은 자기 나라에서 공부하면서도 외국학생들과 똑같이 문화적 다양성에서 오는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하는 그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우리에게 낯선 전통적 디자인 기술들, 향수 어린 ‘레터프레스’, 지금은 특별한 효과를 위해서만 사용하는 ‘실크스크린’, ‘판화’ 등이 아직 교육과정에 남아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학교는 우리에게 해주는 것이 별로 없다. 그 ‘신기한’ 기술들도 이제는 이곳에서조차 사라져 가고 있다. 여기서의 배움은 단지 서로가 서로를 통해 알아가고, 깨닫고 배우는 과정이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성장했음에도, 같은 인간이기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소통할 수 있고, 많은 공통점들을 지니고 있는지, 느끼는 순간 순간이 나에게는 놀라움이고 기쁨이다. 그것은 유튜브나 페이스북을 통해 맺어진 결실이 아닌, 그저 인간이기에 공유할 수 있는 진한 감정들이다. 기술은 단지 조금의 편리함을 더해줄 뿐이다.

여기 지하철에서는 전화도, 모바일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다. 아직 이유는 모르겠다. 처음에는 상당히 불편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그 시간들이 편안하다. 단지 익숙해져서만은 아니다. 때로는 받기 싫은 전화를 피하는 좋은 변명이 되기도 하고, 단 몇 십 분이라도 집요한 ‘온라인’과 작별하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몇 달간 새로움에 적응하고 변화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삶의 목적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라는 짧은 진리가 새삼 길게 느껴진다. 문득 한국을 떠나기 전 방황 속에서 읽었던 김형경 작가의 ‘사람풍경’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용기란, 저어하는 마음 없이 용감하고 씩씩하게 어떤 일을 해 나가는 힘이 아니다. 두

려움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안녕하세요. 아무개씨. 나는, 지금 당신이 쥔 그 두 주먹 가득한 힘을, 긴장으로 움츠러든 가냘픈 어깨를 잠시나마 풀고, 파란 하늘을 향해, 곧 다가올 계절의 변화, 노오란 봄 햇살에 미소 지을, 단 몇 분의 여유를 당신께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도 난 이렇게 미로 속의 치즈를 찾기 위해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맨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는 까마득히 모르지만 굳이 알 필요도 없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기회와 용기, 그리고 하루 스물 네 시간에 다만 감사할 뿐이다. Cheers!

 

이우녕 2006년부터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슈가캔디마운틴’을 운영하였고 지금은 영국 런던의 Central Saint Martins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 Communication Design 석사과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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