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만화의 묘미 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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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와 디자인－제품디자인 2

지난달에 이어 이번 달 미국 만화의 묘미에서는 슈퍼히어로와 디자인 시리즈 중 두 번째, 그것도 제품 디자인의 두 번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지난달에는 DC와 마블의 간판 캐릭터인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의 악당 대항용 툴들을 소개했다. 이 두 캐릭터들은 모두 특별한 환경에서, 배트맨은 광기에 가까운 집념과 엄청난 재정적 뒷받침, 스파이더맨은 천재적인 머리(피터 파커는 과학 영재이다)로 자신들이 사용하는 도구들을 직접 개발하고 있다. 지난달에 소개된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이나 배트맨의 부메랑이 소모성이 강한 성격을 띠고 있다면 이번에 소개되는 슈퍼히어로 제품들은 OEM(위탁주문생산) 제품이라 할 수 있다. 즉, 직접 만들거나 개발한 게 아니라 말하자면 주어진 것들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부서지거나 파괴되면 다시 제작하거나 주문할 수 없는 단일품인 ‘원오프’ 제품들이기도 하다. 특히, 엑스맨의 사이클롭스의 보호안경이나 울버린의 갈퀴는 특별 주문 제작되어 본인만 사용할 수 있게 개발되었다.

#원더우먼의 진리의 밧줄

원더우먼은 아마존 여전사들의 여왕 히폴리타의 딸이다. 그녀는 정의와 사랑, 자비를 베풀기 위해, 그리고 남성 중심 사회로부터 성차별 없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계를 여행한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녀는 절대 파괴되지 않는 팔찌와 투명한 제트기, 그리고 진리의 밧줄을 부여받는다. 팔찌와 제트기는 이후에 소개되기 때문에 이번에는 진리의 밧줄에만 집중하고자 한다. 금처럼 빛나는 이 밧줄은 끊어지지 않으며 길게 연장될 수도 있는 신비한 밧줄이다. 그 강도는 슈퍼맨이나 다른 괴력의 힘을 가진 캐릭터를 묶어둘 정도로, 심지어 핵폭발까지도 제압할 정도로 강하다. 하지만 이 밧줄의 가장 큰 특징은 한번 묶이면 반드시 진실을 밝힐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더우먼의 가장 큰 무기가 바로 이 진리의 밧줄이다.

이 밧줄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건 원더우먼의 창시자인 윌리엄 몰턴 말스턴(그의 필명은 찰스 몰턴이다)에게 있다. 그는 본래 심리학자로 거짓말 탐지기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수축기 혈압 검사를 개발한 것으로도 저명하다. 바로 이 진리의 밧줄이 말스턴이 연구해온 결과라 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의 인용문이 잘 요약해주고 있다. “누구나 이 밧줄에 잡히면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원더우먼이 자백을 받아 내거나 순종하게끔 만드는 이 금밧줄은 다름 아닌 거짓말 탐지기였다. […] 이 밧줄은 진리를 얻어냄으로 정의와 자유를 실현했다. 비록 무력과 제압을 통해서였지만 말이다.”

#토르의 망치, 묘니르

천둥의 신 토르가 휘두르는 짧은 손잡이 망치가 묘니르이다. 그는 천둥/번개, 구름과 비를 제압하는 신으로, 농민 계층의 북유럽인들에게 추앙받던 신이다. 신화에 의하면 한번 던진 묘니르는 결코 빗나가지 않으며 반드시 토르의 손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그리고 토르의 주머니에 들어갈 만큼 작아지기도 했다고 전한다. 묘니르라는 이름은 으스러뜨리는 자를 의미하는데 가히 용도가 확연히 드러나는 이름이다. 마블 코믹스의 토르는 스탠 리가 창시했는데, 당시 슈퍼히어로 이상의 초능력을 가진 캐릭터를 찾다가 신에서 찾자는 생각에서 바이킹들로부터 숭배 받는 신인 토르를 참고했다. 그 아이디어가 이렇게 역대 가장 유명한 마블 코믹스 캐릭터 중 하나로 성장하게 되었다.

묘니르는 유럽 신화에 깊은 유래가 있다. 영국 아더 왕 신화의 엑스칼리버에서 묘니르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데, 바로 바이킹들의 자격이 주어진 자만이 무기를 들 수 있다는 유래이다. 더욱이 유럽 전역에서 이교 숭배의 상징으로서, 토르의 상징이자 동시에 묘니르를 묘사하는 ‘T’ 혹은 거꾸로 된 모양 ‘ㅗ’이 돌에 새겨져 있거나 필사본에 정성들여 그려져 있거나 목걸이 장식으로 사용되는 것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만자로, 서양에서는 스와스티카로 알려져 있는 ‘卍’ 형태가 부러진 토르의 망치인 묘니르를 상징한다는 유래도 있다.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

1941년에 처음 등장한 이 방패는 마블 코믹스의 간판 캐릭터인 캡틴 아메리카의 주요 공/수 무기이다. 구체적인 개발 과정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2001년에 우주에서 떨어진 특수 광물인 바이브레이늄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본래의 것은 중세 기사들의 하트 모양 방패였으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원반 형태의 방패로 속히 대체되었다. 아마 1941년에 캡틴 아메리카가 데뷔할 당시, 유사한 다른 캐릭터의 방패와 비슷하다는 클레임을 잠재우기 위한 결정으로 보인다.

요즘 디자인 분야에서 재료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의 변천 과정을 재료에 따라 정리할 수 있다. 형태나 문양(미국 성조기의 컬러를 이용한, 서로 다른 크기로 겹쳐지는 원형 띠들과 정 가운데의 별)은 거의 변동이 없으나, 재료에 관해서는 좀 전에 언급한 상상의 광물인 바이브레이늄과 애드만티윰의 혼합 혹은 애드만티윰으로만 구성된 방패 등이 있다. 요즘 광선으로 만들어진 방패는 캡틴 아메리카가 아닌 그의 분신이었던 스티브 로저스가 사용하고 있다. 기록을 보면, 지금까지 이 방패는 약 다섯 번 정도 파괴되어 새로 제작되었다. 흥미로운 건 다섯 번 모두 신화 속의 인물들이나 그에 버금가는 신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자들에 의해 파괴된다는 것이다. 이 방패가 얼마나 견고하지 엿볼 수 있다.

바이브레이늄은 본래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이 탁월해 캡틴 아메리카가 기관총 세례를 받아도 끄떡없고, 방패를 원반처럼 던져 적들을 제압할 때도 층격 흡수력 때문에 마치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이렇게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는 언제나 정의와 자유를 수호하고 때로는 공격도 불사하겠다는 상징으로 적절하다. 뿐만 아니라 방패 위에 칠해진 성조기 문양은 미국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도 적합한 디자인이다.

#엑스맨 사이클롭스의 보안경

엑스맨은 돌연변이들을 돕고 그들의 변이－코믹스에서는 마치 신이 내린 능력처럼 보이는 때가 더 많지만－를 통제하고 조절하도록 돕는다. 그 중 스콧 섬머즈는 엑스맨의 표본이라 할 정도로 자신의 변이/장애를 뛰어넘은 훌륭한 슈퍼히어로이다. 그는 자비에 박사의 수제자로서 1963년 엑스맨이 데뷔할 당시부터 줄곧 돌연변이와 인간의 평등사회를 향한 자비에의 꿈을 함께 해왔고, 뛰어난 지도자이자 전략가로 거듭나기도 했다. 그는 반체제, 반사회적인 캐릭터인 울버린과 극심한 대조를 이루고 있어 이 둘의 갈등과 대립은 코믹스에서 보다 근본적인 심리를 자극한다.

스콧 섬머즈는 어릴 적부터 눈에서 통제할 수 없는 파괴적인 광선이 나와 눈을 감을 때만 광선이 나오는 걸 멈출 수 있다. 장님 신세를 면하기 위해 홍옥으로 제작된 렌즈를 안경처럼 사용해 자신의 변이를 통제한다. 하지만 미션 수행 때의 보호안경은 렌즈의 개폐를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어 정확한 광선으로 악당들에 대항한다. 그는 사이클롭스(그리스 신화의 외눈 거인, 키클롭스라 발음하기도 한다)라는 코드명으로 엑스맨을 리드하는 뛰어난 지도자일 뿐 아니라 비행 조종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광선을 이용한 묘기에 가까운 기술로 적들을 제압하는데, 이는 그가 공간과 기하학에 대한 탁월한 이해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엑스맨 울버린의 갈퀴

로건이라 불리는 이 돌연변이는 몸의 상처와 독극물을 보통 인간보다 빠르게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로 인해 보통 인간보다 늙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다. 그에 더해 시각과 청각, 후각 등 오감이 마치 동물처럼 발달되 있어 탁월한 탐사 및 추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 로건은 캐나다의 비밀 인체 실험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때 애드만티윰이라는 상상의 강철을 자신의 골격에 입힘으로써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당대 최고의 슈퍼히어로 울버린이 되었다. 자신의 치유력 때문에 금속을 뼈에 둘러쌀 수 있었고, 팔에서 튀어 나오는 갈퀴 세 개 역시 이 강철에 입혀져 살인병기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울버린이 데뷔할 당시, 베트남 전쟁의 찝찝한 결말 그리고 닉슨 대통령의 탄핵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반체제적인 반감이 미국 사회를 달구고 있었다. 울버린은 그런 분위기를 대변이라도 하듯 기존의 히어로들보다 거칠고, 살인까지 마다하지 않는 극단적인 캐릭터로 소개되었지만, 당시 대중에게 대리만족을 줄 수 있는 캐릭터였다. 생각해보면 울버린 이전의 캐릭터들은 무기다운 무기를 갖고 있지 않아(DC에서 배트맨조차 총의 사용을 금기시할 정도였다) 울버린의 손등의 갈퀴는 가히 위협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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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식

대대로 물려줄 미국 코믹스를 모으는 박경식은 할 일이 없는 건지 할 일이 너무 많은 건지 오늘도 고심한다. 특히 철인 28호는 파산위기에 놓일 만큼 사랑하며 수집하고 있다. 커다란 LP음반이 반도 안 되는 크기의 CD로 확 줄어 들었을 때 심근경색 같은 고통을 느낀 앨범 재킷 수집가이기도 했으며, 각종 잡지와 디자인에 심각한 애정을 느끼는 디자인 마니아이기도 하다. 지금도 집에서 피규어들의 먼지를 하나씩 털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