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Piction / 사소한 작업

 

‘ 선’을 창작하는 세 가지 방법, 세 가지 시선, 세 가지 형태. 강병융 소설가와 지콜론 에디터이자 사진작가인 박현진, 지콜론 디자이너 류보미가 선을 대상으로 세 가지의 창작을 편다. 이 글은 창작 소설이며, 매달 옴니버스 형식으로 쓰여진다.

강병융, 사 진 박현진, 일러스트레이션·디자인 류보미, 에디터 이찬희

취직의 기쁨도 잠시였다. 기쁨은 금세 지루함, 무료함으로 바꼈다. 회사 측은 내게 한 달 이상 아무 일도 주지 않았다. 입사 뒤, 한 일주일 정도 회사 업무 전반에 대해 교육을 받은 뒤, 특수 안경 사용법, 내비게이션 작동법, 흡수기의 이용법과 프로텍터 착용법을 간단히 배운 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저‘앉아있는 일’만 하고 있었다. 특별한 지시가 있을 때까진 아무런 활동도 하지 말라는 것, 그것이 유일한 지시였다. 출근 후, 책상에 앉아 인터넷 뉴스를 좀 보고, 체력단련실에 가서, 한두 시간 운동을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시간을 죽이는 일을 했다. 게임을 하거나, 메신저 채팅이나 SNS 관리한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 같았지만, 왠지 내키지 않았다. 뉴스를 뒤적거리거나, 운동을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에 관심을 가지며, 업무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 대한 관심이 실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며 위안을 삼았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다들 출동을 하거나, 나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나 역시 그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건 분위기 탓이었다. 사무실 내에 무거운 공기가 나를 차분히 누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몸이 근질근질했다. 출동명령만 떨어지면, 빛이라도 때려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입사 전이나 후나, 내가 결정한 길이 인류를 위해 값진 일이라 믿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지루하고 답답했던 시간들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무료하게 하루가 시작되었다. 내가 출근을 했는지, 안 했는지 다른 직원들은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난 자리에 앉아 조용히 노트북의 전원버턴을 눌렀다. 부팅이 좀 더디길 기대했지만, 컴퓨터는 순식간에 잠에서 깨어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익스플로러를 실행시켰다. 그 외엔 마땅히 누를만한 아이콘도 없었다. 창이 열렸다.

포털사이트가 언론사별로 헤드라인을 보여주고 있었다. 헤드라인을 향해 더블클릭. 특별히 읽고 싶은 기사도 없었기에, 생각 없이 한 클릭이었다. 새 창에 신문이름조차 생소한 언론사 사이트가 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무엇을 읽던 시간은 흘러갈 테니까. 활자중독자가 된 양, 기사들을 마구자비로 읽기 시작했다. 헤드라인을 시작으로, 정치, 경제, 사회, 스포츠, 연예, 문화 그리고 세계까지 읽었다. 왜 읽고 있는지, 알 순 없었지만, 읽는 일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국제면에 난 폴란드의 어느 청년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을 때였다. 어쩌면, 당시 내 처지와 묘하게 오버랩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혼자 살기로 결심한 청년의 이야기였다. 폴란드 청년은 사람들과 전면적으로 소통을 거부했으며, 난 사람들과 전면적으로 소통을 거부당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청년은 소통거부 후 행복해졌다고 주장했고, 난 사람들과, 엄밀히 얘기하자면, 회사 사람들에게 소통을 거부당한 후, 불행한 느낌이었다. 결국 청년은 자신이 느꼈던, 그 행복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며, 소통거부를 위한 도구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난 가능만하다면, 소통거부가 아닌 소통, 그 자체를 위한 도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소통거부의 도구가 어떤 것일지 궁금해, 스크롤을 조금 더 아래로 내리는 순간, 컴퓨터 화면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모니터 가운데, 활자가 새겨졌다. 호출명령이었다.

“ 지금 당장 출발대기실로 가시오. ” 이른바 첫 번째 지시가 내려진 것이었다. 그 순간 소통이니, 폴란드니, 도구니 하는 것들은 연기처럼 머릿속에서 싹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동안 느꼈던 지루함이나 답답함도 한 번에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출발대기실로 뛰었다. 여전히 다른 직원들은 가구처럼 앉아 있을 뿐, 나의 움직임에는 무심했다. 그들은 원래 그런 존재들이었다. 상대에게 무관심한, 혹은 그래야만 하는.

처음 들어가 보는 출발대기실은 예상대로 엄숙했다. 한 명뿐인 대기실 직원은 가면을 쓰고 있는 듯, 무표정했다. 웃는 표정도, 찡그린 표정도 아니었다. 말하는 동안에도 입조차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직원은 내게 추적할 수 있는 내비게이션과 추격하는데 필요한 경비사용을 위한 회사 법인카드, 그리고 격투 시 몸을 보호할 수 있는 프로텍터를 지급했다. 그리고 선을 볼 수 있는 특수 안경도 지급했다. 내비게이션 작동여부를 확인하고, 프로텍터를 입었다. 실제로 입어본 프로텍터는 교육 때, 입었던 것보다 훨씬 착용감이 좋았다. 안경도 아주 가볍고, 편했다. 직원이 내 상태를 확인한 후, 최종 출발을 승인했다. 그리고 끝으로 선(line)을 흡수할 수 있는 흡수기를 줬다. 직원은 내 손에 흡수기를 쥐어주던 순간, 표정이 살짝 변했다. 웃지는 않았지만, 눈빛으로 뭔가를 말하고 있는 듯 했다. 난 나름 이렇게 해석해버렸다. 잘다녀와! 혹은 파이팅!

드디어 출발.

내비게이션은 내가 잡아야 할 선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선의 위치뿐 만 아니라, 선의 태동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었다. 난 일단 내가 처리해야 할 선이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봤다. 선은 바다에서 태어났다. 바다를 가르며, 마치 바다에서 올라온 것처럼 선들이 물속에서 나왔다. 그리고 물 위로 올라온 선들은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중에 몇몇은 멀리 가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그 중 하나, 강력한 힘을 지닌 선만이 지상까지 날아왔다. 내가 잡아야 할 놈이었다. 선은 이미, 뭍으로 올라와 몇몇의 희생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늘 그랬듯이 이유는 없었다. 어디선가 생겨난 선들은 홀로 혹은 집단으로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다치게 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하는 일은 그 선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이른바 악의 광선을 처단하는 일이 우리가 맡은 바였다. 아직 전인류가 이 선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늠하긴 힘들지만, 어찌되었던 선의 존재, 선의 제거는 철저히 국가적인 기밀이다. 그것은 우리도, 미국도, 유럽도, 일본도, 러시아도, 심지어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정부든 국민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고 싶지 않아 하는 까닭에 그들은 암묵적 합의를 통해, 비밀스럽게 이 선들의 정보를 공유하고, 제거하고, 연구해왔다. 그리고 선들에 의해 제거된 유명 인사들은 그저‘의문사’라고 발표하곤 했다. 우리 회사는 물론이고, 선과 관련된 다른 회사들도 선의 출처를 밝혀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선들은 그저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났다. 그리고 마구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처단했다. 처단의 대상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광선인 만큼 엄청 빠르고, 잡기가 쉽지 않았다. 이 악의 광선들은 어쩔 땐 계획한 것처럼 중요한 사람들을 제거했지만, 어쩔 때는 선량한, 불특정 다수를 없애기도 했다. 그래서 각국의 조직들은 선의 출처와 동시에, 선의 제거에 힘썼다. 빛처럼 빠른 광선을 잡기 위해, 내비게이션, 프로텍터, 흡수기가 개발되었다.

내비게이션에 의하면, 지난달에 동해에서 최초 발견되었던 선들이 그 인근에 출몰하다 대부분 바다로 다시 사라져버렸고, 한 선만이 지상으로 올라왔다고 했다. 그 선은 한동안 아무활동도 하지 않은 채, 잠잠하다가, 점점 서쪽으로, 즉 서울 쪽으로 오고 있다고 표시되었다. 춘천을 지나, 동쪽으로 오고 있는 선은 이미 정동진에서 어린 관광객 한 명에게 큰 부상을 입혔고, 춘천에서는 유치원에 들어가 아이 하나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아니 잘라놓았다. 어린 관광객은 부모가 보는 앞에서 머리에 큰 구멍이 나버렸다. 춘천의 아이는 감자칩처럼 잘게 토막이 났다. 마치 광선검에 당한 것처럼 깔끔하게 잘라진 모습이었다. 희생당한 아이들의 신원도 내비게이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건 나중 일이었다. 난 배운 대로 흥분하지 않고, 선의 움직임을 예상했다. 선은 강촌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선의 사고능력(思考能力)에 대해 찬반양론이 분분하지만, 난 그 악의 광선이 분명히 어떤 의도나 목적을 지니고 움직인다고 믿고 있었다. 악은 후천적인 것이고, 악은 인위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문명이 발달할수록 악은 더 악해지는 법이라고 믿었다.

 

난 회사에서 주차장에서 세워진 추적용 차를 타고 출발했다. 회사에서 강촌으로 가는 길을 멀지 않았다. 도로 양쪽은 계절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차가 너무 없거나, 너무 많았다면, 지루하기 딱 좋은 길이었다. 경춘로를 달리며, 선의 이동을 짬짬이 확인했다. 동선으로 볼 때, 선은 분명히 강촌 인근의 민박촌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선은 제 속도를 내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움직임의 경향으로 볼 때, 충분히 이동경로를 알 수 있었다.

선은 예상대로 강촌의 민박촌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인근에 내가 도착했지만, 선은 별다른 동요를 하고 있지 않았다.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었고, 바람도 살랑살랑 기분 좋을 만큼 불고 있었다. 선이 맴도는 주위로 달렸다. 선 근처에 차를 세우고, 내비게이션으로 선의 이동을 예의 주시했다. 기회를 봐서, 흡수기의 스위치를 올리고, 특수 안경도 제대로 썼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일을 하고 있다는 기쁨과 인류를 위해 공언하고 있다는 사명감 그리고 전장에 나온듯 흥분이 공존했다.

낮은 포복으로 내비게이션을 보며, 선이 있는 쪽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선에 가까이 접근하자, 내비게이션은 필요 없었다. 특수 안경을 통해 선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선을 부드럽게 동선을 그리며, 공중을 떠다니고 있었다. 흡수기로 흡수해버리기엔 다소 먼 거리였다.

선은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맴돌고 있었다. 선이 생각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모습을 선에게 노출시키면 안될 것 같았다. 선은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하늘을 날았다. 실제로 내 눈 앞에 보인 선의 모습은 악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살아있는 것 같았고, 미와 추로 구분하자면, 미에 가깝게 느껴졌다. 분명히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보아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어떤 신호 같았다. 선은 8을 눕혀 놓은 것처럼 회전하다가, 3미터 정도 위아래로 움직이다가, W자를 그리며, 좌우로 왕복운동을 반복했다. 안경을 쓰고, 계속 선의 움직임을 지켜보려니, 눈이 아팠다. 해독해 보려 했지만, 처음 보는 외국어처럼 이해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규칙이 있음은 분명했다. 선은 스피드를 조절하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저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구슬픔이 전해졌다. 춤사위로 감정을 전달하는 유희처럼 선의 움직임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표정 없는 선의 언어를 난 이해할 수 없었다. 한참을 공중에서 날던 선인 순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선이 멈추자, 하늘도 멈춘 듯 했고, 바람도, 심지어는 소리도 멈춘 듯 했다. 나도 숨을 멈췄다. 시간을 빼곤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는 것만 같았다. 참고 있던 내 숨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올 때쯤, 선이 움직였다. 아이들의 소리가 나는 쪽이었다. 순간, 늦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선을 따라 가려 했지만, 선은 나의 시선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선은 아이들이 모여 있던 방으로 들어갔다. 열린 창을 통해, 안으로 침투했다. 난 흡수기를 들고, 뛰었다. 방문을 여는 순간, 난 후회했다. 어떤 것에 대한 후회인지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후회의 크기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아이들은 토막 나 있었다. 교사로 보이는 여인 몇 명도 토막 나 있었다. 어떤 아이는 웃은 채로 잘라져 있었고, 어떤 아이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의 얼굴이 동강나 있기도 했다. 김밥처럼 다리가 일정한 크기로 잘라져 있던 아이도 있었고, 몸통 가운데 동그란 구멍이 난 아이도 보였다.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방안은 난장판이었다. 하지만 피 범벅이 되어 있거나, 더러워져 있진 않았다. 일상이 그냥 정교한 칼로 조각나 있는 느낌이었다. 난 선을 찾아 방안을 둘러보았다. 천장이 그다지 높지 않은 건물이었기 때문에 발견만 한다면, 흡수기로 흡수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은 천장에 붙어 있었다. 특수 안경을 착용했음에도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천장에 붙어 교활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흡수기를 들이대려 하자, 선은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다시 무언가를 전하려는 듯, 일정한 패턴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이 눈앞에서 정신없이 춤을 췄다. 때론 비보이들처럼 정신없이 빠르게, 때론 승무처럼 우아하고 부드럽게, 그러더니 갑자기 내게로 날아왔다. 난 순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날 지켜준 것은 프로텍터였다. 선은 나를 공격하려 했던 것 같다. 난 내게 날아든 선을 보고 놀라, 순간적으로 흡수기의 버튼을 눌렀다. 흡수기는 선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작동했다. 선은 순식간에 흡수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발버둥 칠 틈도 없이 기계 안으로 흡수되었다. 임무완수와 동시에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복귀명령이었다.

난 다시 차를 탔다. 그리고 서울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반대 차선에서 경찰차와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민박촌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잘려진 아이들과 메시지를 전하던 선이 계속해서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렇게 첫 임무를 완수한 날이 저물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그 죽음의 원인을 제거했지만, 계절은 그대로였다. 도로 양 옆에선 계절을 충분히 느낄만한 풍경을 제공하고 있었다.

봄이었다.

첫 임무 완수의 벅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난 회사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하지만 아직도 난 그 때 내가 왜 전속력을 냈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임무를 위해서였는지, 무언가를 피하기 위한 도주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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