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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가 꼽은 한국영화 포스터 58

영화계에서는 해마다 한국영화 포스터를 결산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폐간된 영화전문지 <필름2.0>을 시작으로 <무비위크>가 매년 ‘올해의 포스터’를 선정했으며, 영화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 역시 자체적으로 그해 최고의 포스터를 지목, 해당 디자이너에게 트로피를 안기고 있다. 하지만 영화관계자의 이 포스터 선정은 사뭇 예상과는 다른 결과를 도출하기도 했다. <지콜론>은 디자이너로 구성된 선정단을 통해 무엇보다 ‘디자인’을 기준으로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주목할만한 영화 포스터를 꼽아봤다. 그들의 추천 이유는 제각각 다르지만, 주목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총 영화 58편의 포스터가 추려졌고, 대부분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로 그 시기가 집중되었다. 특이할만한 점으로는 개성 강한 영화감독들의 작품이 다수 선정되었으며, 홍상수의 거의 모든 영화 포스터가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에디터 이상현, 이안나 | 사진 스튜디오 salt 

 

<인정사정 볼 것 없다> _ 1999

 김기조  영화에서 폐광촌의 마지막 결투장면이 유명한 것처럼, 포스터에서도 절정의 순간이 담아졌다. 알짜배기 장면을 굳이 아끼지 않고 드러낸 것이다. 거친 질감과 초점이 흔들린 대담한 사진에 방향성을 가진 선 굵은 로고타입이 더해지면서 불안한 운동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김상규  (달동네) 느와르의 걸쭉함과 처절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인상적인 포스터다. 여기에 비하면 <매트릭스3>는 얼마나 고상한 주먹질인가. 세계를 구원하는 대결이었으니!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_ 2000

김원선  캘리그래피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던 시절, 강렬한 타이틀과 역동적인 앵글의 절묘한 조화, 충격이었다.

김지원  10년 전의 영화다. 날카롭게 터지는 차갑고 검붉은 핏빛 때문에 지금껏 차마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배경색의 서늘한 물빛처럼 차갑고 인정머리 없는 폭력일 것이 틀림없다. 새파란 하늘빛 아래 서글픈 인생을 그린 휴먼액션이 아닌 것이다. 디자이너의 색을 취하는 안목에 박수를!

이주승 그래픽적인 요소는 최대한 절제하면서 사진과 캘리그래피만으로 영화의 긴장감을 극대화 시킨 작품. 정형화된 서체를 사용, ‘잘 보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스타일로 굳어가던 영화 포스터에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했다. 대학생일 때 만난 이 영화와 포스터가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김수랑 레이아웃의 힘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구도의 단단함. 더하여 유려하면서도 적절하게 사용된 캘리그래피의 힘을 이 영화보다 더 나아가 성취한 한국영화 포스터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이 영화의 포스터가 제작된지 벌써 십 년이 훌쩍 지났다. 아쉽고 또 아쉬운 일이다.

반윤정 그래픽디자이너라면 많은 이들이 이 포스터를 꼽을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포스터가 주는 느낌이 강렬했다.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느낌의 캘리그래피는 류승범의 터진 입술에서 흐르는 핏줄기와 어울려 춤추는 액션이라는 콘셉트를 한층 더 살리는 역할을 한다. 액션영화라면 으레 등장할만한 붉은색, 핏빛 같은 컬러를 배제하고 녹색이 주조를 이루면서 주는 이질적인 느낌이 더 세련돼 보인다. 이 포스터는 이후 등장하는 그래픽디자인 분야에 캘리그래피 붐을 일으켰다.

<나쁜남자> _ 2001

김원선  극중 주인공의 심리상태와 관계를 너무나 효과적으로 암시한 포스터. 거울 속 표정과 주인공의 뒷모습은 묘한 궁금증을 느끼게 한다.

윤반석  영화가 개봉한 무렵 친구에게 간단한 줄거리만 들었다가 처음으로 포스터를 보았을 때,‘ 이 영화는 이렇게 하지 않을까’혼 자 짐작했었다. 마치 영화의 감성이 포스터에 옮겨진 것처럼, 보는 이에게 그게 어떠한 것이든 느낌이 전해진달까. 그리고 이 포스터를 두 번째로 봤을 때 느낌이 참 달랐다. 그리고 세 번째는 또 달랐고. 처음에는 포스터의 의도대로 여자주인공의 나체가 눈에 띄었다. 두 번째는 거울에 비친 악마 같은 남자주인공의 얼굴이 강하게 눈에 들어왔고, 세 번째로 포스터를 보고서야 영화의 부제인‘ 내 여자 창녀 만들기’카 피가 눈에 들어왔다. (이 문장은 나중에 바뀐 걸로 알고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_2001

이주승 이재용 사진작가가 찍은 한 컷의 사진이 영화의 모든 분위기를 판타지적인

감성으로 잘 표현했다. 더불어 재미난 타이포그래피가 포스터의 완성미를 높였다. 지금도 작업실 한 벽면에 붙어있을 정도로 보고 있으면 영화적 상상력을 느끼게 한다.

이석운 당시 시청역 지하철 계단에서 퇴근길마다 보게 되었다. 극장에서는 영화가 내렸는데도 이 포스터는 계속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속 분위기는 따뜻하고 재밌게 보여 부러웠고 퇴근길의 나는 외롭고 우울했던 기억이다. 감성을 자극하는데 성공한 사진 한 컷이다.

선우현승 영화는 젊음의 많은 갈등을 얘기한다. 주인공들은 내심 따스함을 가진 상태였고 시간의 흐름과 변화로 인해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냈다. 그 갈등은 서로 간에 완성되어가는 과정의 근거이자 배경이다. 첫 느낌은 주인공들의 근본적인 따스함처럼 매우 아늑했다. 지켜보고 있자니 타이틀은 무언가 어설프지만 수줍게 얘기하는 듯했다. 맞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제목의 돌기는 의아스럽지만 나무랄만한 정도도 아니다. 완성을 바라는 따스함을 품은 성장통 과정의 근거이자 배경을 포스터에서도 보여준다.

<극장전> _ 2005

김지원  그가 본 것은 환상이었을까 아니면 현실인 걸까? 멍한 겨울 어느 날, 애매하고 흐릿한 현실반 상상반의 무색 시간대를 사이에 두고 이쪽의 파란 세계 저편에는 빨간 세계가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만져질 것도 같다. 섞일 듯 말 듯. 홍상수식 세계가 깔끔하게 표현된 디자인

한 장이구나.

<친절한 금자씨> _ 2005

이석운 <올드보이> 효과로 박찬욱의 차기작은 뭘 해도 다 용서되는 분위기였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던 차에 나온 <친절한 금자씨>의 티저 포스터. 대체적으로 본편 포스터보다 티저 포스터들이 과감하고 실험적이다. 타이포나 이미지에서 의도된 키치 콘셉트가 더욱 감각적으로 보인 건 박찬욱 작품이라는 후광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한 장의 티저 포스터는 즐거운 긴장을 주었고 당시 디자이너의 센스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에 나온 본편 포스터는 사공이 많이 개입한 듯한 느낌의 아쉬운 결과물로 걸리게 되었다.

윤반석 박찬욱 감독의 미장센 스타일이야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 테지만, 티저 포스터에서 이영애는 거의 재발견 수준이라 기억에 남는다. 정말 아름다운 외모, 그러나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미모였다. 아마 이 한 장을 만들기 위해 숱한 디자이너들이 로고타입부터 레이아웃까지 엄청 공을 들였을 것이다. 수작 중 수작으로 꼽고 싶다.

김선관 한국영화를 볼 기회가 거의 없어서, 기억에 남는 영화를 추려볼 때 떠오르는 건 포스터다. 포스터는 기억과 관계된다. 지금 떠오르는 포스터는 <친절한 금자씨> 티저 포스터다.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포스터를 꼽아보면 그것은 영화에 대한 단평과 포스터가 주는 잔상이 가장 클 것인데 그런 점에서 <친절한 금자씨>는 인상적이었다.

 

 

반윤정 어머니와 같이 보러 갔다가 무척 낯 뜨거웠던 기억이 난다. 이 포스터는 요즘 관심가지고 모으고 있는 옛날 느낌의 손글씨 장식체를 사용해서 더 흥미로웠다. 배경을 없앤 공간 속을 홀로 걷고 있는 금자씨 뒷모습은 시니컬하거나 외로워 보인다. 초록과 빨강 붓터치 외에 모든 요소를 흑백 처리한 과감한 디자인은 그녀의 또 다른 성격, 파괴적이고 잔인한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영화는 본 포스터 이외에도 장식적이고 독특한 티저 포스터로도 유명한데, 키치적인 감성으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한 피에르 앤 쥘의 사진작업이 모티프가 되었다.

한명수 ‘어쭈, 영화 포스터를 싱겁게 이렇게도 하네. 자신 있다 이거군’ 이런 느낌으로 봤던 디자인. 보통 지면을 커다랗게, 박력 있게, 꽉 차게 보여주는 영화 포스터의 전형이 있다면 헐겁게 힘 빼고 느슨하게 만들어서 의외였다고 생각했다. 뒷얘기를 차후에 제작자한테 들었더니 디자이너도, 영화사도 반대했지만, 박찬욱 감독이 억지로 우겨서 겨우 진행했던 작가주의적(!) 디자인이었다고. 그래서 뒤늦게 이해할 수 있었던 포스터.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_ 2007

김수랑  사람의 얼굴만큼 많은 이야기와 감정을 품는 이미지가 또 있을까. 그런 이유로 얼굴 컷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영화 포스터의 레이아웃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보편적인 사용 안에서 일반적인 결과물을 뛰어 넘는 성과를 얻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이 포스터는 보편적인 선택 안에서 밋밋함을 영민하게도 비껴가고 있는데 영화를 효과적으로 설명하면서도 디자인적인 재미를 한껏 품고 있다. 인물 컷 안에서의 세심한 장치들과 스탠실 세팅을 응용한 타이포그래피의 적절한 사용에서 콘셉트를 제대로 구현한 빛나는 성취감이 느껴진다.

 

<웰컴 투 동막골> _ 2005

선우현승 느낌과 감정을 담지 않은 결과물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내구성도 없다. 격변의 순간이었고 운명적인 슬픔을 가진 시대의 이야기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풋풋하다. 모든 환경과 순간을 버린 순수한 사람들이다. 여느 영화와는 달리 중앙에 자리한 제목글자의 소박한 사각 형태는 작지만 깊고 맑은 느낌이다.

이상현 한국전쟁을 다룬 전쟁영화지만 특유의 유머와 따뜻한 휴머니즘을 적절하게 잘 살린 기분 좋은 포스터이다. 한국 전쟁 중에 국군과 인민군, 마을사람들이 한 마을에서 만난 아이러니를 한 컷의 포스터로 상징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캘리그래피 로고를 강혜정이 두 손으로 한 아름 안고 있는 듯 한층 더 따뜻한 느낌을 준다.

<박쥐> _ 2009

이강현 정말 어둡고 섬뜩하며 강렬한 포스터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모노톤에 포인트 컬러인 강렬한 붉은색은 죽음과 피를 표현하기에 충분했고 거꾸로 매달려 있는 여자의 이미지로 흡혈귀의 형상을 완성시킨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영화의 스토리와 느낌을 한 장면에 그대로 담아 표현한 멋진 포스터라고 생각한다.

김경태  1. 소재와 어울리면서도 너무 과하지 않은 표현의 제호 2. 함축적인 표현으로 군더더기 없는 사진 3. 거꾸로 보아도 괜찮다.

김양수  도발적이고 선정적이면서도 괴기스러운 <박쥐>의 포스터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 멋지고 인상적인 포스터는 어이없게도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에 걸려 결국 다리 부분을 삭제해야 했으니, 어떤 면으로 상당히 불운한 포스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후 원본 포스터를 외국 배급 때 쓰겠다고 했으나 정작 미국판에서는 다리는 물론 가슴골까지 지워야 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 이밖의 디자이너가 꼽은 한국영화 포스터는 <지콜론> 11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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